유인 구조위계정부힘의 균형자생적 질서자유로운 결사상호부조비폭력직접행동기회의 창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틀

출발점

자유로운 세상은 완성된 설계도에서 시작할 수 없다. 모두를 위한 단일한 체제를 설계해 위에서 강요하려는 시도는, 자유가 극복하려는 바로 그 구조를 되살릴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출발점은 사회의 미리 정해진 모형이 아니라 관계, 제도, 변화를 이루는 방법을 평가할 틀이다.

이 틀이 키우려는 것은 자율성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억압할 수 있게 하는 구조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빚어 갈 능력이다.

목표는 구조를 분명히 보는 것이다.

세상 문제의 진짜 근원은 무엇인가?


유인 구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유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유인이란 개인이나 집단에게 행동할 이유를 주는 모든 조건이다.

유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돈일 것이다. 하지만 돈은 한 형태일 뿐이다. 안전, 소속감, 인정, 호혜, 자존감, 창의성, 연민도 사람을 움직인다.

유인 구조는 어떤 행동에는 이득을, 다른 행동에는 비용을 부여해 행동의 방향을 잡는 보상, 처벌, 위험, 기회, 제약의 장치다. 규칙이나 이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하든, 체제가 실제로 무엇을 장려하는지를 보여 준다.

보상 체계

중앙집중적인 권력 구조는 권력, 돈, 통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 중앙집중적 통제가 그들에게 다른 모든 사람을 좌우할 더 큰 힘을 주기 때문에, 권력을 얻으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특히 큰 보상이 돌아간다. ༆

사람들은 이를 ‘부패’라 부르지만, 그 결과는 체제와 별개가 아니다. 중앙집중적 권력을 이용해 착취하는 사람들은 그 구조로부터 보상을 받고, 그들이 장악한 제도는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더 깊은 토대가 되는 것은 유인 구조다. 집중된 권력에 보상이 돌아가고 거부에 비용이 따르는 곳에서 위계가 굳어진다. 그렇게 생긴 위계는 자신을 낳은 구조를 유지한다.


위계

위계는 한 개인이나 집단을 다른 개인이나 집단 아래에 두는 피라미드형 조직이다. 지위의 차이가 권위의 수준에 대응하는 서열 조직이다. 즉, 아래 사람에게 명령할 권리와 위 사람에게 복종할 의무가 지위에 따라 정해진다.

정치적 의미에서 위계는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다. 과거의 유인 구조가 현존하는 위계를 만들었고, 위계는 다시 그 유인을 바꿔 자신을 재생산한다.

역할이 다르거나 오래 지속된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이 위계가 되지는 않는다. 그 역할이 권위로 굳어져 복종할 의무를 낳을 때 위계가 시작된다.

식량, 토지, 안전, 고용, 법, 정보, 폭력에 대한 통제가 한쪽에 다른 쪽을 좌우할 힘을 줄 때, 기존의 조건은 위계를 가능하게 한다.

위계는 그 힘을 인정받는 권위, 지속되는 서열, 명령, 복종의 의무로 굳힌다. 그런 우위가 다른 사람의 복종을 계속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굳어질 때 착취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위계가 자리 잡고 나면 더 이상 유인의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위계 자체가 유인을 만들어 내는 장치가 된다. 권위를 쌓고 전략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에게 보상한다. 거부를 처벌하고, 명령에 적합한 성향의 사람을 골라 내며, 자신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조건을 재생산한다.

유인 구조와 위계를 이해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와 그것이 낳는 억압이 드러난다.

권위

권위는 한 개인이나 제도에 명령할 권리를 부여하고 복종을 요구하며, 그 명령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받는 권리 주장이다.

권위는 힘과 다르다. 힘은 행동하고, 설득하고, 저항하고, 돕고, 해칠 수 있는 능력이다. 권위는 그 힘을 행사할 권리로 바꾼다.

전문성은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지도력은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누구에게 지배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 조언이 남을 구속할 권한으로 바뀌고 거부가 불복종으로 취급될 때 권위가 시작된다.

권위는 늘 힘을 쓸 필요가 없다. 힘을 쓰겠다는 위협이 이미 제도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부하는 사람은 소득, 주거, 지위, 필요한 자원을 얻을 기회, 자유를 잃거나 결국 폭력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권위는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명령은 일상이 되고, 복종은 당연하게 여겨지며, 처벌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집행으로 받아들여진다.

권위는 위계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폭력을 매 순간 드러내지 않고도 지배가 계속되게 한다. ༆


정부

정부는 위계의 특정한 제도 형태다. 전체 인구와 영토에 대한 권위를 주장하고, 정당한 폭력의 독점을 주장하며, 구속력 있는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고, 법원·경찰·교도소·군사력을 통해 복종을 강제하는 중앙집중적 조직이다.

인간은 폭력적이고 믿을 수 없어서 지배자 없이 살 수 없다는 주장은 양쪽 모두에 적용된다. 지배자도 똑같이 결함 있는 인간이다. 다만 그들은 군대, 교도소, 감시, 과세, 법을 통제한다. 집중된 권력은 인간의 최악을 억제하지 않는다. 그 피해가 미치는 범위를 넓히고 책임 추궁에서 보호한다.

사람이 위험하다면 소수에게 수백만 명을 다스릴 힘과 권위와 통제권을 주는 것이 답일 수 없다. 불신은 힘을 분산하고 나눠 어떤 개인이나 제도도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못하게 해야 할 이유다.

누가 권위를 행사할지 선택하는 것과 계속 그 권위 아래 있을지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지배자에 대한 견제는 그들을 제약할 수 있다. 하지만 견제의 힘은 권력에 도전할 능력에서 나오지, 지배자가 갖는 복종받을 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계속 명령할 권리를 인정하면 위험이 하나 더 생긴다. 도전을 받는 쪽이 거부를 처벌하고, 그에 맞서는 데 필요한 자원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세상은 피해나 갈등이나 인간의 실패가 사라진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분산된 힘에는 파편화와 협력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권위가 있는 제도도 조정할 수도 있고 다른 힘을 제약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능력은 그 제도가 주장하는 권위와 별개다.

권위는 그런 위험을 상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실패가 미치는 범위를 넓히고, 그 결과를 권위 아래 있는 모두에게 떠넘기며, 그 결과를 낳은 결정을 교정할 수 있는 피드백으로부터 차단해 실패의 영향을 증폭시킨다.

필요한 보호조차 사람들을 그 보호를 제공하는 쪽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보호를 제공하는 쪽은 그 의존을 이용해 계속 명령할 권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

한 힘이 다른 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힘을 최종 권력으로 만들면 지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느 힘도 최종 권력이 되지 못하게 해야 지배를 제약할 수 있다. 다른 힘을 억제할 능력이 있는 힘도 저항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제하던 힘이 다음 지배자가 된다. 이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면 안전장치는 균형 그 자체다. 계속 명령할 권리를 주장한다고 견제력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균형이 계속 억제해야 할 비대칭이 생긴다.

권위를 거부한다는 것은 실패의 결과를 감당해야 할 사람들에게 누구도 계속 명령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면서 조정과 제약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생각은 흔히 공상이라고 일축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공상적인 가정 위에 선 것은 현 체제다.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에게 전체 인구에 대한 힘, 권위, 통제권을 맡기면서도 그들을 충분히 제약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왕좌에 앉은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왕좌 자체가 있다는 것이다.

과세

강제란 누군가의 뜻에 반해 행동하게 하거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려고 힘을 쓰거나 처벌·박탈을 가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과세는 처벌의 위협 아래 자원을 강제로 빼내는 일이다.

정부는 사람들이 자원을 내는 데 동의하는지와 관계없이 자원을 요구한다. 거부한다고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 정부의 집행력이 뒷받침하는 처벌이 시작된다.

이 점에서 과세는 자발적 교환과 다르다. 자발적 교환에는 실제로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과세는 또한 결정과 비용을 분리한다. 결정을 내린 사람이 비용 전부를 직접 부담하지 않아도 정부는 자원을 쓸 수 있다. 지원을 자유롭게 철회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비용을 나눠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 작동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전쟁을 승인하는 사람들은 그 비용 전부를 직접 대지 않는다. 정부는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을 포함한 수백만 명에게서 자원을 빼낸다. 그 자원을 강제로 내야 하는 사람들의 동의 없이도 소수의 결정권자가 폭력에 쓸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 자원을 자신이 다스리는 사람들과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 과세는 사람들의 노동이 낳은 것에 정부가 지속적인 동의를 받지 않고도 계속 접근할 수 있게 한다. ༆

따라서 문제는 세금의 액수보다 더 깊다. 과세는 한 제도가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노동 일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운다.


힘의 균형

힘의 균형은 힘이 충분히 분산되어 어떤 개인이나 제도도 실질적인 저항이나 대안, 대가에 직면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할 수 없는 상태다.

균형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힘, 자원, 지식,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차이가 사라질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차이가 너무 커져 거부가 무의미해지고 권위로 굳어질 수 있는가다.

힘의 균형은 이 유인을 뒤집는다. 사람들이 저항하고, 관계를 끊고, 다시 조직하며, 대안을 통해 필요를 채울 능력을 지닐 때 지배는 세우기 어려워지고 유지하는 데도 더 큰 비용이 든다.

따라서 자유로운 세상은 사람이 본래 선하거나 믿을 만하다는 전제에 기대지 않는다. 누구도 다른 모든 사람을 지배할 만큼 힘을 집중하지 못하는 조건에 달려 있다. 착취하려는 유인은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항할 힘으로 착취할 능력을 제약할 수 있다. ༆

그러려면 힘을 분산해 개인과 자유롭게 결사한 집단 쪽으로 되돌려야 한다. 자율성과 자급 능력이 중요한 까닭은 의존이 상대에게 나를 좌우할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한 제도가 생활필수품을 통제한다면 그것을 거부할 자유는 대부분 형식에 그친다.

같은 기준은 정치 밖의 사적 통제에도 적용된다. 토지, 주거, 고용, 기타 필수품에 대한 통제가 한쪽에 거부를 비싸게 만들 만큼의 힘을 주고 의존을 복종할 의무로 바꾼다면, 경제 관계도 위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자급 능력은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식량, 에너지, 지식, 소통, 지원, 협력의 여러 공급원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깊이 의지할 수 있다. 대안이 많을수록 어느 한 제도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다른 모두에게 명령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힘의 균형은 동시에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기존 위계를 떠받치는 의존과 권력의 집중을 줄여 그 위계를 해체하고, 힘을 분산하고 대안을 열어 두며 거부를 가능하게 해 위계의 귀환을 막는다.

새로운 권력 집중이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보장을 하려면 그것을 강제할 만큼 강한 또 다른 권위가 필요하다. 목표는 권력 집중이 영구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힘은 이동하고, 모이고, 흩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그 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에 대체 불가능한 지배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서비스 자체를 중복해서 제공할 수 없더라도, 운영에 필요한 장비, 지식, 물자, 지원을 특정 제공자 밖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면 운영 주체는 바꿀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고도 통제권을 넘길 수 있다.

믿을 만한 보호에는 지속적인 방어 능력이 필요하지 영구적인 명령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능력을 독립적인 결사들에 분산해 어느 보호자도 자신에게 저항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독점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계속 명령할 권리는 관계를 바꾼다. 거부 자체가 처벌 사유가 될 수 있어 보호자가 저항에 맞서 자기 요구를 강제할 수 있다. 보호자가 자신에게 도전할 수단까지 통제하면 그 보호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건강한 힘의 균형은 집중에 맞서 밖으로 퍼져 나가는 힘에 의존하고, 또 그 힘을 강화한다. 대안과 경쟁, 저항과 새로운 결사가 계속 가능하면 더 이상의 집중을 막는 압력이 된다.

지속적인 힘의 균형은 지식과 능력을 퍼뜨리는 교육, 대안을 열어 두는 기회, 지배의 비용을 높이는 억지력을 통해 강화된다. 갈등이 생길 때는 중재, 재활, 회복, 관계 단절로 피해와 의견 차이를 다룰 수 있다. 분쟁을 영구적인 권위의 근거로 만들 필요가 없다.

목적은 지배를 제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가능성과 복종하는 존재로 전락하기를 거부하는 불굴의 능력을 풀어 주는 데 있다.

자유로운 세상은 힘의 균형이 자율성을 지키고 어떤 개인이나 제도도 구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못하게 할 때에만 가능하다.


자생적 질서

자생적 질서는 분산된 협상, 교환, 기업가적 활동이 모여 대규모 조정을 이루는 중요한 조정의 힘이다. 이런 조정은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의도적인 계획이나 명시적인 공동 설계도가 없어도, 또는 그런 계획의 능력을 넘어서는 규모에서도 생긴다.

우리 주위의 많은 질서는 이미 이렇게 발달한다. 언어를 완성된 체계로 설계한 사람은 없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소통하고, 말을 바꾸고, 관습을 만들고, 서로에게 반응하면서 언어가 생겨났다. 인터넷은 의도적인 프로젝트와 공동의 통신 규약을 통해 발전했지만, 최종적으로 형성된 전체 체계를 설계한 단일한 계획자는 없었다.

자생적 질서의 중심에는 평형이 있다. 평형은 고정된 정지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압력이 작용하고 체계가 조정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균형이다.

자연, 사회, 사회경제 체계는 이런 압력에 의해 빚어진다. 한 부분의 변화가 다른 곳에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체계 곳곳에서 다시 반응을 일으킨다. 부족과 풍요, 유인과 협력, 갈등과 수요,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행동을 민다. 유인 구조는 어떤 행동에 보상이 주어지고 어떤 행동이 억제되거나 비용을 치르는지 정하면서 이 조정의 방향을 잡는다. 질서는 하나의 힘이 전체를 통제해서가 아니라 이런 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난다.

이 과정은 되먹임을 통해 작동한다. 사람들은 행동하고, 결과를 겪고, 서로를 관찰하고, 조정한다. 각 반응은 다음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주는 새 정보를 만든다. 반복해서 조정하다 보면 지역의 상호작용이 어느 한 사람이 설계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관된 형태로 모일 수 있다.

어떤 실패는 되먹임이 작동하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시험과 수정에만 맡겨서는 안전하지 않다. 그런 위험에는 실패한 뒤의 조정만이 아니라 실패하기 전의 대비와 행동 조율이 필요하다.

피해를 숨기거나 남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되먹임은 협력 대신 착취에 보상할 수 있다. 자생적 질서가 본래부터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나타나는지는 유인 구조가 좌우한다.

중앙집중적 통제는 분산된 되먹임을 미리 정해진 결과로 대체하려 할 때 이 과정을 방해한다. 지식은 실제로 변하는 조건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흩어져 있으며, 그중 많은 부분은 지역적이고 실용적이며 일시적이다. 규모와 복잡성이 커질수록 중앙 위계는 더 먼 거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 소수의 결정권자가 전체 체계에 대응하는 일은, 그 안에서 직접 상황에 대응하는 사람들만큼 효과적으로 해내기 점점 어려워진다.

자생적 질서는 지식과 조정이 이루어지는 수많은 지점의 상호작용으로 복잡성에 대응한다. 조정은 체계 안에서 축적된 대응에서 생겨난다. 적응이 전적으로 중앙의 조정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충격을 지역에서 흡수할 수 있고, 대안이 발달할 수 있으며, 더 넓은 구조가 실패에 맞춰 계속 재조직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창발하는 질서다. 작은 부분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내는 대규모 조정이다. 질서는 체계 위에 덧씌우는 것이 아니다. 각 부분이 서로에 반응하고 변화하는 평형을 향해 움직이면서 체계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법으로 질서를 그저 명령할 수는 없다. 질서는 사람들이 협력하기로 선택하면서 생기는 창발적 결과다. 사람들이 서로 싸울 유인을 갖는다면 법만으로 협력하게 만들 수 없다. 자유로운 세상을 세운다는 것은 협력과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유인을 만드는 일이다.

네트워크

네트워크는 모든 상호작용이 중앙 권위를 거치지 않아도, 연결된 개인이나 집단이 직접 소통하고 조정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위계는 정보와 결정을 소수의 중앙 지점에 모은다. 네트워크는 이를 분산한다. 사람들이 변하는 조건에 직접 반응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실질적 필요를 중심으로 조직할 때 조정은 아래로부터 생길 수 있다.

그 한 가지 작동 방식이 스티그머지다. 어떤 행동이 남긴 신호가 다음 행동을 이끈다.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 놓은 일에 반응한다. 그 과정에서 중앙 계획자가 매 단계를 지시하지 않아도 복잡한 조정이 생겨나 퍼질 수 있다.

뿌리줄기가 매우 강력한 구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의 줄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나무와 달리 뿌리줄기는 서로 연결된 많은 뿌리와 새순을 통해 옆으로 퍼진다. 가지를 내고, 다시 연결되고, 번식하며, 일부가 손상돼도 계속 자란다. 어느 한 지점도 전체를 통제하거나 자기 안에 가둘 수 없다.

형식적인 위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네트워크가 분산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접점이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 되면 의존이 위계에 필요한 지렛대를 다시 만들 수 있다. 많은 접점이 같은 공급자, 자원, 정보,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조정 자체 때문에 기존 네트워크를 떠나기 어려워질 때도 그런 의존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규모는 형식적인 위계를 만들지 않고도 의존을 되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핵심 기능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기능을 이전하고, 경로를 바꾸거나, 대체할 수 있는가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시작한다. 위에서 강요한 변화는 그것을 강요한 중앙 권위에 계속 의존한다. 아래에서 자라는 변화는 수많은 독립적인 지점을 통해 퍼지고, 그 연결을 통해 힘을 더하며, 포획하거나 억누르거나 되돌리기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분산된 네트워크는 중복된 기능과 대안 경로, 문제가 생긴 부분을 우회해 재조직할 능력으로 버틴다. 위계는 통제와 함께 실패도 집중시킨다. 네트워크는 다른 연결을 통해 재조직하고, 여러 실험을 나란히 진행하고, 장애를 우회할 수 있다.

자생적 질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규모를 키운다. 여러 부분의 상호작용에서 조정이 자라나고, 반드시 거쳐야 할 통제 지점이 없기에 전체 구조는 더 잘 적응하고 버티며, 포획하기 어려워진다.


자유로운 결사

자유로운 결사에는 강요된 소속, 의무적인 참여, 평화롭게 떠나는 일을 막는 모든 권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어느 집단도 계속되는 동의를 넘어 개인의 지속적인 참여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 사람들은 필요와 관심이 바뀌면 자유롭게 떠나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결합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자유로운 결사는 개인에서 시작한다. 관계나 조직이나 공동체에 들어간다고 자율성을 넘겨주는 것은 아니다. 참여하는 동안 동의도 계속되어야 한다. 어제 맺은 약속이 내일도 누군가를 구속할 영구적인 권리가 될 수는 없다.

떠나면 생활필수품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탈퇴는 의미가 없다. 자유로운 결사에는 거부를 형식이 아닌 실제의 선택으로 만들어 줄 만큼 강한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은 필요할 때 실제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머물 곳, 그곳으로 갈 방법, 옮겨 가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돌봄이 있어야 한다. 공동 비축과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를 위기 전에 마련하면 그럴 수 있다. 어느 제공자를 거부하기 위해 누구도 혼자 생계 수단을 다시 세워야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연히 공통의 관심사와 필요, 관계, 목표를 중심으로 모인다. 이런 친화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강요된 소속이 아니라 실제로 뜻이 맞아서 집단을 이룬다. 한 사람은 삶의 서로 다른 부분을 반영하는 여러 결사에 동시에 속할 수 있고, 어느 결사도 그 사람의 전부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사안마다 협상하고, 타협하고,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목표가 너무 멀어지면 갈라설 수 있다. 하나의 결사가 여러 결사로 나뉘어, 여전히 잘 유지되는 관계는 지키고 그렇지 않은 관계는 놓아주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다시 결합할 수 있다.

이로써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이 가능해진다. 상황에 따라 집단은 형성되고, 나뉘고, 겹치고, 다시 연결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결정을 강요하는 대신 자유로운 결사는 서로 다른 답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한다. ༆ 사람들의 무한한 다양성과 서로 다른 결사의 형태를 구성할 능력에서 복수성이 생겨난다. 다원성은 위에서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낳는 구조적 결과가 된다.

이는 공동체의 의미도 바꾼다.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만으로 수십만, 수백만의 낯선 사람이 실질적인 하나의 공동체가 되지는 않는다. 공동체는 관계, 친숙함, 공동의 목적, 가까움,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자란다. 탄탄한 지역 결사는 단일 권위에 흡수되지 않으면서도 더 넓은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규모가 본래부터 위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결사들은 수평으로 겹쳐지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이해가 만나는 곳에서 협력하며, 다른 곳에서는 독립적으로 남을 수 있다. 정보와 자원, 지식과 조정은 중앙의 명령 구조를 거치지 않고도 그 연결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모든 기능을 오늘날과 같은 규모로 조직할 필요는 없다. 지역의 역량이 커지면 먼 지역과의 조정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다. 더 넓은 조정이 계속 필요한 곳에서는 네트워크가 협력을 여러 지역으로 넓힐 수 있으며, 그 조정을 참여자에 대한 상설 권위로 만들 필요가 없다.

구성원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더라도, 조정 기구가 독립적인 개인과 결사들이 어떤 활동에 관해 자기 결정에 따라야 하는지 정할 일반적인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네트워크는 누구나 위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제안하고, 실험하고, 잘된 방식을 본받고, 바꾸고, 대안을 만들 수 있기에 열려 있다. 성공한 형태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퍼진다. 실패한 형태는 모두에게 강요되는 실패가 되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

떠날 자유는 이런 관계가 지배로 굳어지지 않게 한다. 떠난다는 것은 완전히 탈퇴하거나, 참여를 줄이거나, 협력 상대를 바꾸거나, 병행하는 결사를 만들거나, 더 이상 맞지 않는 방식을 거부하는 일일 수 있다. 떠나면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해야 하거나, 다른 결사들에서도 똑같은 배제가 따라온다면, 자유는 단지 떠날 능력만이 아니라 그런 조건에 도전하거나 조건을 바꿀 능력에도 달려 있다. 평화로운 분리가 막히고 참여가 의무가 되면 결사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결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끼친 피해나 자유롭게 맺었고 다른 사람들이 정당하게 믿고 의지한 약속에 대한 책임까지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약속에 대한 책임이 그 이행을 강요할 정당성을 자동으로 주지는 않는다. 중재, 회복, 관계 단절 등으로 깨진 약속에 대응하되 그 대응을 해당 분쟁에 묶어 둘 수 있다. 책임은 특정한 피해나 약속에 묶여 있어야 한다. 사람 자체를 소유하거나 일반적인 복종 의무로 바뀔 수는 없다.

협력을 거부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강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필수품에 대한 통제를 이용해 복종을 강요하거나, 기꺼이 돕겠다는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강제다.

어떤 피해는 분리만으로 피할 수 없다. 특히 영향이 넓게 퍼지거나,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전가되면 해로운 행동을 억제할 되먹임이 약해진다. 분산은 모든 대응이 지역 안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피해가 결사나 지역을 가로지르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그 경계를 넘어 조정하고, 공동 기준에 합의하거나, 영향을 추적할 수 있다.

분리로 피해를 막거나 계속되는 피해를 멈출 수 없다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중재를 구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해를 멈추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공동의 위험을 멈추려면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고 개인의 책임이 분명하지 않아도,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에 일시적인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 제한 자체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는 각각 별도로 정당화해야 한다.

피해를 주장한다고 분쟁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호는 특정 피해를 멈추는 데 한정되어야 하며, 더 넓거나 끝을 정하지 않은 통제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입하는 사람들도 이의 제기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 개입의 근거와 수단, 지속 여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를 개입한 사람들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독립적인 이의 제기에는 정당화할 수 없는 제한을 바꾸거나 정당화 근거가 사라진 개입을 멈출 실제적인 힘이 포함되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사람을 강제할 힘에 기대어 해결을 보장하는 영구적인 권위를 세우는 대신,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을 것이다.

자유로운 결사는 사회가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최종 조직 형태를 정하지 않는다. 강점은 바로 그 질문을 열어 둔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자율적인 사람들이 계속 스스로의 관계를 구성하게 한다. 모두를 하나로 묶어 지배할 권위가 있는 단일 구조가 아니라, 수없이 겹쳐지는 결사들로 이루어진 사회 질서를 만든다.


상호부조

상호부조는 호혜에 바탕을 둔 협력이다. 우리의 이익이 반드시 충돌할 필요는 없기에 서로 돕는다. 누구나 필요, 능력, 지식, 자원, 기회가 다르다. 이를 나누면 양쪽 모두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자유로운 세상은 제로섬 관계에서 벗어난다. 부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만들어진다. 협력하면 두 사람 모두 혼자서는 만들어 내지 못했을 만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다만 이익을 위해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면 진정으로 모두에게 이익인 관계가 아니다. 진입 장벽과 인위적인 희소성이 제거되어 사람들이 자신과 서로의 필요를 채울 길이 더 많이 열릴수록 이런 관계는 쉬워진다.

반복되는 관계를 통해 호혜성은 강해진다. 탄탄한 동네와 공동체는 우정에서 자란다. 사람들이 서로 알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음식, 도구, 기술, 지식, 거처, 시간, 도움을 나누는 데서 자란다. 주위 사람들이 더 이상 낯선 이가 아니라면 누군가 가난해지거나 집을 잃는 일은 먼 기관에 맡겨 둘 보이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그를 알고 돌볼 이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 필요가 보인다.

이런 관계들은 더 넓은 상호부조 네트워크로 이어져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 밖까지 도움을 전하고, 개인이나 한 동네가 혼자 제공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어떤 사람에게는 음식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빈방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수리하거나 가르치고, 재배하고, 짓고, 운반하고, 돌볼 수 있다. 관계가 더 많이 겹칠수록 사람들은 도움을 구할 길이 많아지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하나의 제도에 의존할 필요는 줄어든다.

호혜는 돌봄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스로 떠나거나 도움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의 자유는 돌봄을 한 사람이나 한 관계가 통제하지 않는 데 달려 있다.

여러 돌봄 제공자와 독립적인 관계가 겹치면 학대에 맞서기 쉬워지고, 변화가 있어도 돌봄을 이어 가기 쉬워진다. 당사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동의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본인이 밝힌 선호를 따르고 돌봄은 필요한 범위에 머물러야 한다. 의존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 사람을 소유하지 않는다.

믿을 만한 상호부조를 이어 가려면 꾸준한 관리도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쓰거나 중요하게 여기거나 나중에 필요할지 모를 서비스를 유지할 이유가 있다. 지속적인 제공에는 꾸준한 노동과 자원 투입, 공동 비축, 지친 돌봄 제공자와 유지 담당자를 위한 교대와 휴식이 필요하다.

돌봄의 비용이 언제나 모두에게 똑같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넓은 네트워크는 그 불균등한 부담을 한 사람에게만 남기는 대신 더 많은 사람, 자원, 관계로 나눌 수 있다. 부족할 때는 필요와 이용할 수 있는 물자를 드러내면 우선순위를 협의하고 지역 네트워크 밖에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필요하다는 사실만으로 부족한 자원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희소성이 복종받을 권리를 세우지도 못한다.

상호부조는 자기희생이 아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을 때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더 안전하고 건강하고 자유롭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도 더 안전하고 풍요롭고 자유롭게 한다. 개인의 안녕과 공동의 안녕은 서로 반대편에 놓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한다.

지배와 복수는 평화 대신 갈등의 조건을 재생산한다. 상호부조는 돌봄, 사랑, 희망으로 고통에 응답하면서 고통이 다시 생기기 어렵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을 세운다.

우리는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을 내디딤으로써 그 세상을 만든다. 지금 서로 돕고, 주위의 관계를 강화하며, 누구도 혼자 세상과 맞서지 않아도 될 만큼 그 관계를 튼튼하게 한다.

우정

탄탄한 공동체는 공동체라는 추상 개념이 아닌 우정에서 시작한다. 우정은 개인적이고, 의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당사자들이 직접 만들어 간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 집단, 대의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조직이 그 관계에 대한 권리를 갖지는 않는다.

친구들에게 관계를 규정하거나 합의를 강요할 외부 권위는 필요 없다. 어떻게 지낼지, 각자의 경계가 어디인지, 언제 관계를 바꾸거나 끝낼지 스스로 결정한다. 관계를 끊을 자유가 없다면 결사의 자유도 의미가 적다.

우정에는 자연스러운 한계도 있다.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하나의 관계로 커질 수 없고, 그것이 강점의 일부다. 우정은 작게 남아 있으면서도 서로 겹치고 밖으로 이어져, 모두를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묶지 않고도 협력을 퍼뜨릴 수 있다. 더 넓은 네트워크에서는 친구가 아닌 사람들도 서로 조정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단일한 사회 집단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목표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한 관계에서 더 탄탄한 공동체가 자라게 하자.


비폭력

비폭력은 자유로운 세상을 세우는 데 더 나은 전략이다.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방법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습관, 유인, 조직, 힘의 분포를 빚는다. 정치적 폭력은 저항 자체의 유인 구조를 바꿔 비밀주의와 명령, 강제를 장려하고 무력을 집중할 수 있는 조직에 보상을 준다.

정치적 폭력은 도전하려던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사람들은 폭력을 보면 두려워진다. 두려움은 보호를 약속하는 경찰, 군대, 정부로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래서 폭력은 도전받는 바로 그 위계의 집행력을 키울 수 있다. 더 넓은 대중이 도전자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동시에 정부가 치안 활동, 감시, 탄압, 무력을 확대할 명분을 준다.

정부는 이미 조직된 폭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경찰, 군대, 교도소, 정보 기관, 무기, 권위를 집행하도록 만들어진 보급망을 통제한다. 폭력을 쓰면 정부가 대결의 조건을 정하고 가장 강한 수단을 쓸 수 있게 된다.

비폭력은 다른 방향에서 위계를 공격한다. 직접행동, 시민 불복종, 파업, 거부, 상호부조, 자급 능력, 공동체 만들기, 건설적인 대안, 참여 철회는 중앙집중적 제도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의존 관계를 공격한다. 정부는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협력에 의존한다.

희망도 정치적 힘이다. 목표는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투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고, 꿈을 좇고, 잠재력을 키우고, 서로 도울 수 있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 주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

희망은 경험을 통해 현실이 된다. 우정, 상호부조, 자율성, 자급 능력, 정원, 협력, 직접행동, 실제로 작동하는 대안은 지금 다른 삶의 조각을 사람들에게 준다. 미리 실천하는 일은 중앙 권위가 사라지기 전에 역량을 분산한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결사, 상호부조, 독립적인 지식과 대안을 통해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될수록 중앙집중적 제도에 대한 의존이 줄기 시작한다.

폭력 혁명에는 반대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현 정부를 무너뜨린다고 집중된 권력의 구조가 반드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무장 조직은 무기, 비밀, 명령, 정보, 보급, 작전 능력을 집중한다. 힘과 역량이 분산되기 전에 현 정부가 무너지면 폭력을 행사할 능력이 가장 큰 조직이 생긴 권력 공백을 차지하기에도 유리하다. 지배자는 바뀌지만 구조는 여전히 탈취할 수 있는 채로 남는다.

비폭력은 평화주의나 자기방어의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당장의 피해를 다른 방법으로 멈출 수 없다면 방어를 위한 힘이 필요할 수 있다. 목적은 지배를 멈추는 것이지 힘을 해방의 조직 원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는다.

자기방어 능력은 계속 유지하면서도 그 사용은 방어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남길 수 있다. 힘의 균형은 방어 능력을 분산하고 도전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며, 자유로운 결사는 일시적인 무력이 영구적인 권위 구조가 되지 못하게 한다.

지속되는 위협에는 대비, 안정적인 물자 공급, 정보 공유, 결사 사이의 조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경험 있는 이들에게 특정한 방어 업무를 맡기면서도 그 역할은 해당 업무에 한정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둘 수 있다. 방어 능력 자체가 새로운 권력 집중이 될 수 있기에 방어에서는 위험이 특히 크다. 무기, 물자, 외부 지원이 어느 한 집단의 독점적 통제에 들어가지 않을 때에만 이 구분이 현실로 남는다.

분산된 방어에도 다른 위험이 있다. 한 결사의 대비가 다른 결사를 놀라게 하고, 그에 대한 대응이 다시 첫 결사의 두려움을 확인해 주는 듯 보일 수 있다. 가능한 경우 직접 접촉하고, 불안을 일으키는 주장에 대해 독립적으로 확인하고, 동원에 상호 제한을 두면 양쪽 모두 방어 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물러설 길을 얻을 수 있다.

비상시의 조정은 해당 업무에 한정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분산된 방어도 패배할 수 있다. 중앙집중적 명령도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유는 투쟁이 끝난 뒤에야 찾아와서는 안 된다. 투쟁하며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3.5% 법칙

구조적 변화에 전체 인구가 한꺼번에 들고일어날 필요는 없다.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스테판의 연구에 따르면, 1900년부터 2006년 사이 정권 교체, 독립, 점령 종식을 목표로 한 주요 비폭력 운동의 성공률은 폭력 운동의 두 배가 넘었다.

이 연구에서 나중에 3.5% 법칙이 나왔다. 최초 자료에서는 정점에 인구의 최소 3.5%를 적극적으로 동원한 비폭력 운동 가운데 실패한 사례가 없었다.

정부는 경찰과 군사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계속 일하고, 복종하고, 명령을 집행하고, 자원을 운반하고, 기반 시설을 유지하고, 권위를 받아들이는 데 의존한다. 정부는 실제로 다스리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협력에 의존한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압력의 한 부분일 뿐이다. 참여와 거부가 퍼질수록 협력은 불안정해진다. 노동자들이 협력을 멈춘다. 명령이 집행되지 않는다. 지지자들이 이탈한다. 내부자들이 지시 집행을 멈춘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협력을 잃으면서 힘의 균형이 움직인다.

비폭력 운동은 모두가 군인이 될 필요가 없기에 훨씬 폭넓은 참여를 이끌 수 있다. 사람들은 파업하고, 불매하고, 거부하고, 지원을 철회하고, 자원을 제공하고, 다른 사람에게 거처를 주거나, 그저 협력을 멈출 수 있다.

후속 연구에서는 2010년 이후 비폭력 운동의 성공률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체노웨스는 정부가 대응 전략을 조정한 점과, 운동이 압력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조직과 전략과 지구력 없이 빠른 동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 점을 함께 지적한다. 동원은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지만, 그 뒤를 받칠 지속적인 조직과 실제 역량이 없다면 오래가는 변화의 조건을 세우기 전에 그 창이 닫힐 수 있다.

3.5% 법칙은 보편 법칙도 성공을 보장하는 문턱도 아니다. 성공한 비폭력 운동 대부분은 3.5%에 도달하지 않았고, 후속 연구에서 예외로 보이는 사례도 확인됐다. 성공 공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관찰된 양상이다.

3.5% 법칙의 교훈은 인구의 정확히 3.5%가 어떤 정부든 항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는 모두가 함께 각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직접행동

직접행동은 권위자에게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문제에 직접 대응하는 것이다. 권위에 개혁을 요구하면 변화를 윗선에 맡기는 것이다. 직접행동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 손에 행동할 힘을 남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부패가 아니다. 체제는 그 안에 짜인 유인과 권력 집중에 따라 움직인다. 대표자를 바꾸면 결정은 바뀔 수 있지만 권위의 기계는 그대로 남는다. 대의 정치는 관료제의 여러 층 아래 원인과 결과를 묻어 버린다. 사람들이 행동해도 그다음에는 제도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직접행동은 바로 이곳, 지금 변화를 만든다.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시험하고 그 위에 다음 일을 쌓는다.

직접행동에는 허가가 필요 없다. 사람들은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을 철회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위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변화는 사람들이 이미 행동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 시작해,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아래로부터 퍼질 수 있다.

풀뿌리에도 힘이 있다. 위계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파업은 그 의존을 즉시 드러낸다. 총파업은 기계의 많은 부분을 한꺼번에 멈출 수 있다. 비공인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제도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도 집단적인 힘을 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직접행동은 그 의존을 지렛대로 바꾼다. 구조에 반대하는 것과 구조가 기능하는 데 필요한 것을 거두는 것은 다르다. 거부와 철회는 관계 자체를 바꾼다.

직접행동은 위계의 필요를 줄이는 대안을 세운다. 상호부조, 자급 능력, 독립적인 교환, 협동조합, 병행 제도는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더 직접 채울 힘을 준다.

두 측면은 서로를 강화한다. 기계를 멈추면서 대안을 세운다. 저항은 위계의 능력을 줄인다. 건설은 위계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

사람들은 복종을 거두면서도 그 일에 의지하는 이들과 직접 협력해 필요한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일시적인 중단은 지렛대가 될 수 있지만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는 여전히 문제다. 도전받는 구조를 거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필품을 끊는 데 그 지렛대가 의존한다면 저항의 압박 비용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없어서는 안 될 기능에서 지속적으로 철회하려면 대체 경로나 계속되는 접근이 필요하다. 자기 대안의 숨통까지 끊는 저항은 명령을 복원해야 한다는 요구를 강화한다.

건설도 나름의 압력을 만든다. 사람들이 세운 것에 의지하게 되면 운영하는 이들은 중단으로 잃을 것이 많아져 대결에 더 조심스러워질 수 있다. 반대로 저항은 사람들이 지키려는 대안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중복된 수단과 대안 경로 덕분에 대안이 중단을 견디고, 저항이 사람들이 의지하는 역량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위계에 필요한 것을 거둘 때 이 긴장은 줄어든다.

직접행동은 미리 실천하는 일이 된다. 사람들은 언젠가 승리한 뒤까지 자유를 미루지 않고 지금 만드는 관계와 제도를 통해 자유로운 세상을 세우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행동이 체제 전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 ༆ 성공한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자율성을 늘리고, 다음 행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이 아래로부터 연결되고 쌓이면서 힘의 균형을 바꾼다.

정원

자유로운 세상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시작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자신과 서로의 필요를 채울 능력을 되찾는 곳 어디서든 시작한다. 음식을 기르고, 쓸모 있는 기술을 배우고, 도구를 나눈다. 믿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지역 생산자와 협동조합을 돕는다. 오래가고 퍼질 수 있는 쓸모 있는 일 하나로 시작한다.

정원은 실제 공간이자 사회 구조를 보여 주는 비유이기도 하다. 정원은 땅, 지식, 노동, 협력을 사람들이 직접 쓸 수 있는 것으로 바꾼다. 공동 작업장은 필요한 것을 만들고 고칠 장소를 준다. 농산물 직거래 장터는 생산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한다. 각각 필요와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

핵심은 어떤 특정한 경제 모형이 아니다.

자급 능력은 고립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강해진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기술을 기르고, 일을 나누고, 만든 것을 교환하고,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돕는다. 정원이 부엌, 작업장, 협동조합, 지역 생산자, 동네 서비스와 연결되면 흩어진 프로젝트들이 실질적인 자립을 이루는 더 넓은 네트워크를 이루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지식, 도구, 생산 능력을 더 많이 직접 갖출수록 삶을 떠받치는 관계에서 선택지가 많아진다.

지역에서 세우자. 이웃을 알아 가고, 쓸모 있는 일을 함께 하며 친구를 사귀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계속 실패하며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볼 수 있다.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때 문제를 다루기 쉽다.

이 관계들은 위로 커지지 않고 밖으로 자랄 수 있다. 서로 다른 집단은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전문 분야를 나눌 수 있고, 협력이 도움이 되는 곳에서 직접 연결할 수 있다. 어느 한 조직이 모든 것을 제공하거나 전체를 통제할 필요가 없다. 겹쳐지는 결사가 빽빽할수록 서로 다른 기술, 관계, 공급원, 실패를 우회하는 경로 덕분에 더 강해진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대안이라 부르는가가 아니다. 대안에도 유인 구조가 있으니 똑같이 물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가? 명령을 재현하는 협동조합은 바꾼 것이 거의 없다. 기준은 실질적이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조건을 거부하거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유일한 길을 잃지 않고 떠날 수 있는가?

한 수원에 의존하는 정원이나 한 사람의 지식에 의존하는 작업장은 그 지점에서 취약하다. 가르칠 수 있는 기술, 재현할 수 있는 방법, 함께 쓰는 도구, 여러 곳에서 공급받는 물자는 누구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지 않고 쓸모 있는 일을 지속하게 한다.

기존 세상과 말끔히 분리될 필요는 없다. 직접적인 관계에 조금 더 가깝게 옮길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식량 공급원 하나, 기술 하나, 도구 하나, 서비스 하나, 협동 프로젝트 하나, 더 탄탄한 우정 하나. 하나하나의 이전은 작지만 다음 이전의 토대가 될 무언가를 남긴다. 시간이 흐르면 흩어진 프로젝트가 네트워크가 되고, 네트워크는 견고해지며, 의존은 분산되기 시작한다.

정원이 숲이 되기 위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공간이 있는 곳에서 자라고, 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 가지를 뻗고, 이미 살아 있는 것과 연결되고, 더 자랄 씨앗을 맺는다. 자유로운 세상도 같은 방식으로 세우자. 지역에서, 직접, 평화롭게, 아래로부터 밖으로.


기회의 창

자유로운 세상은 혁명의 순간 이후가 아니라 그전에 세운다.

중앙집중적 제도를 통제하던 사람들을 제거해도 그 제도가 통제하던 역량이 분산되지는 않는다. 식량은 계속 이동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깨끗한 물, 약, 거처, 통신, 교통, 보호,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역량이 계속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을 가장 빨리 복원하는 자가 막대한 권력을 물려받는다.

따라서 결정적인 일은 겉으로 보이는 전환점보다 먼저 일어난다.

자유로운 사회는 이미 중앙의 명령 밖에서 작동하는 관계, 기술, 제도, 기반 시설을 통해 서서히 발달한다. 상호부조 네트워크, 지역 식량 체계, 협동조합, 독립적인 통신, 분산된 에너지, 수리 능력, 열린 지식, 돌봄 네트워크, 갈등 해결, 분산된 자기방어는 실질적 역량을 중앙집중적 제도에서 떼어 내 그 역량에 의지하는 사람들 손으로 옮긴다.

이것이 미리 실천하기의 전략적 의미다. 낡은 것의 껍질 안에 새것을 세우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단절은 갑자기 올 수 있다. 그 단절을 견뎌 낼 능력은 천천히 자란다.

전환에는 단 한 번의 깔끔한 단절이 필요하지 않다. 낡은 제도가 우세한 동안에도 새로운 관계가 나란히 자랄 수 있다. 어떤 기능은 빨리 분산되고 다른 기능은 훨씬 오래 집중된 상태로 남을 수 있다. 기존 구조 안의 틈이 실질적인 자율성이나 구조 밖에서 조직할 역량을 늘린다면 사람들은 그 틈을 이용할 수 있다. 기존 구조를 변화의 수단으로 만들지 않고도 그런 틈을 이용할 수 있다. 새로 생겨나는 세상은 처음에는 부분적이고, 타협이 섞여 있고, 대체하려는 세상과 얽혀 있을 것이다.

대안이 대체하려는 바로 그 중앙집중적 제도에 의존한다면 힘의 균형을 바꾸지 못한 채 흡수될 수 있다.

대안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도 낡은 구조가 통제하는 토지, 물자, 기반 시설, 기타 자원에 여전히 의존할 수 있다. 이런 배치는 낡은 구조가 부담의 일부를 덜면서도 그 의존이 주는 지렛대의 상당 부분을 유지하게 한다. 한 기능을 넘겨받는 일과 의존 관계를 대체하는 일은 다르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낡은 구조가 통제하지 않아도 지속할 능력을 더 많이 갖출 때에만 균형이 움직인다.

대안이 중앙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게 되면 탄압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앙집중적 제도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수록 그 제도가 대안을 억제할 유인도 커질 수 있다. 탄압이 모든 공급원을 끊을 수 있다면 흩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독립적인 네트워크 사이에 지식과 지원을 공유하면 한 장소나 조직을 잃어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다. 하나만 제거하면 대안을 없앨 수 있는 단일 구조가 남지 않는다.

미리 실천하는 일은 제도의 붕괴가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든다.

목표는 사회 밖에 순수한 한 구역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른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그 공간을 옆으로 연결하며, 일상생활의 더 많은 부분을 점차 그 안으로 옮기는 것이다. 자발적인 대안으로 대체된 의존 하나하나가 낡은 체제의 지렛대를 약화시킨다. ༆ 서로 돕는 관계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거부 능력을 키운다.

전환은 건설에서는 점진적이고 결과에서는 급격할 수 있다.

중앙집중적 제도가 충분한 역량이나 정당성을 잃어 영구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방식이 협상 가능한 것이 될 때 기회의 창이 열린다. 문명 전체가 무너질 필요는 없다. 공급망이 끊긴다. 정부가 정당성을 잃는다. 기업이 한 마을을 떠난다. 전력망이 고장 난다. 통화가 불안정해진다. 파업으로 평소 서비스가 멈춘다. 독점 기업이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더는 공급하지 못한다. 중앙집중적 체계는 장소, 부문, 기능에 따라 고르지 않게 실패한다.

실패가 일어날 때마다 낡은 구조가 더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의 일부를 대안이 맡을 기회가 열린다.

이런 틈은 반복해서 생길 수 있다. 비교적 안정된 동안 병행 제도들이 자란다. 중앙집중적 체계가 약해진다. 이미 존재하는 대안이 그 기능의 일부를 맡는다. 대안은 자리를 잡고, 경험에서 배우며, 서로 연결되고, 이전보다 큰 역량을 갖고 다음 위기에 들어간다. 낡은 위계는 살아남을 수 있지만, 매번 사람들이 그것에 덜 의존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이 아니다. 아무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조건에 대비하는 것이다.

중앙집중적 제도가 약해진다고 자유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위기는 공포, 부족, 불확실성, 믿을 만한 질서에 대한 요구를 낳는다. 이런 조건은 상호부조를 강화할 수도 있지만 파시즘, 군국주의, 조직범죄, 종교적 권위주의, 안정 회복을 약속하는 새 정부를 강화할 수도 있다.

권력 공백은 더는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기능에 대한 요구다.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울지는 누가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식량, 의약품, 통신, 교통, 보호, 작동하는 기반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자는 막대한 영향력을 얻는다. 그 능력을 권위주의 조직만 갖고 있다면 겁에 질린 사람들은 위계만이 여전히 작동하는 구조라고 여기고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실천하기는 권위주의 세력이 뒤를 잇는 상황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위기 전에 자란 병행 제도가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향할 길을 남긴다. 분산된 기술, 기존의 관계, 작동하는 네트워크, 명령 없이 협력한 경험이 중앙 체계의 붕괴가 만들어 낼 공백을 줄인다.

그런 대안이 없다면 붕괴는 의존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심화한다.

대안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참여하려면 남는 시간, 돈, 안전이 필요하다면 가장 큰 압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참여가 가장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참여하기 전에 완성된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음식이 저렴해서, 돌봄이 믿을 만해서, 동네가 더 안전해서, 수리 작업장이 돈을 아껴 줘서, 참여자들이 존엄하게 대해 줘서 함께할 수 있다. 자유로운 결사, 상호부조, 자생적 질서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때 더 설득력 있어진다.

기준은 실질적이다. 대안이 실제 필요를 채우면서 자율성을 높이고 역량을 분산하는가?

압박 속에서 작동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위기를 헤쳐 나가도록 돕지 못한다. 통제를 집중해야 작동하는 프로젝트는 그저 다음 위계가 될 수 있다. 대안은 그 방법이 자율성과 자유로운 결사를 지킬 때에만 작동한다.

그것에 의지하기 전에 대체 가능성을 시험하자. 자금이 끊기거나 공급처가 제 기능을 못 하거나 핵심 인력이 떠나도 공급을 이어 갈 수 있는가? 평범한 고장과 실제적인 기능 이전은 무엇이 중앙집중적 제도에 여전히 의존하는지 드러낸다. 그 작업이 충분해지기 전에 갑작스러운 붕괴가 올 수 있다. 그때는 독립을 선언하는 것보다 물자, 유지 관리, 돌봄을 지키는 일이 앞선다. 일시적인 의존이 영구적인 명령권을 만들지는 않는다.

두 과정은 동시에 일어난다. 지금 필요를 채울 역량을 세우면서 그 역량을 이용해 지배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 건설이 없으면 저항은 공백을 남길 수 있다. 저항이 없으면 대안은 기존 체제 안에 갇힐 수 있다.

목표는 중앙집중적 제도를 갈수록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기능은 하나씩 옮겨 갈 수 있다. 지식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시적인 상호부조는 지속적인 사회 기반 시설이 될 수 있다. 비공식 공급 경로는 오래가는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공동체는 비상시에 효과가 있었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 실패한 프로젝트조차 다음 시도를 더 강하게 할 기술, 관계, 도구, 지식을 남길 수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세운 것이 앞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정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창의력을 풀어 주면 혁신이 일어나 한때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한 범위로 끌어온다.

성공은 정부가 무너지거나 그 건물에 깃발을 올리는 모습으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중앙집중적 제도의 유용한 기능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그 제도의 중요성이 오랜 시간에 걸쳐 쇠퇴하는 모습일 수 있다.

결정적인 승리는 그 기계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 기계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 큰 틈이 언제 생길지는 알 수 없다. 체계는 불안정 속에서도 버티고, 반대를 흡수하고, 지도자를 바꾸고, 비용을 떠넘기고, 개혁하거나 탄압할 수 있다. 붕괴를 예측해야만 성립하는 전략은 취약하다.

미리 실천하기에는 예측이 필요 없다. 기존 체제가 계속되면 독립적인 관계와 역량이 지금의 삶을 개선한다. 서서히 쇠퇴한다면 대안이 버려진 기능을 맡을 수 있다. 위기가 반복되면 기회가 열릴 때마다 병행하는 사회가 더 강해질 수 있다. 더 큰 단절이 온다면 물자, 기술, 이미 형성된 협력 관계를 갖춘 네트워크가 새로운 중앙 권위가 그 공백을 차지하지 못하게 할 대안을 사람들에게 준다.

그러므로 기회의 창은 기다릴 대상이 아니다.

그 창이 열릴 조건을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위계가 여전히 영원할 것처럼 보일 때도 자유로운 세상은 자란다. 정원 하나, 우정 하나, 협동조합 하나, 기술 하나, 네트워크 하나, 상호부조의 행동 하나, 독립적인 실질 역량의 공급원 하나하나가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는 또 다른 자리를 만든다. 대안들이 연결되면서 의존은 분산되고 힘의 균형이 형태를 갖춘다.

다음 창이 열릴 때 자유는 무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자유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Vox Libera

출발점

“독단적인 세계관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사람을 그보다 더 옥죄고, 혁신에 그보다 더 눈멀게 하며, 새로움에 마음을 여는 태도를 그보다 더 파괴하는 것은 없다.” — Stephen Jay Gould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자기 방식만이 세상을 보는 유일하게 제정신인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의식적인 독단을 없애는 일이 중요합니다. 제 목표는 사람들을 보편적인 불가지론의 상태로 이끌어 보는 것입니다. 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말입니다. 자기 신념 체계로만 사물을 볼 수 있다면 사실상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될 운명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만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게릴라 존재론입니다. 하나의 모형으로 보는 관점을 깨고 사람들에게 여러 모형의 관점을 주는 것이죠.” — Robert Anton Wilson, Jeffrey Elliot와의 인터뷰 “Searching for Cosmic Intelligence” (1980)

“어떤 용어와 생각은 ‘반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해를 돕기보다 오히려 흐려서 다른 정당한 개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용어다. 반개념의 중요한 한 부류는 ‘개념의 묶음’이라 불린다. 실제로는 함께 속하지 않는 것들이 함께 속한다는 숨은 전제를 의미 안에 감춘 모든 용어를 가리킨다.” — Roderick T. Long

“다시 말해 단 하나의 유형은 없다.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변화 그 자체와, 그로 인해 서로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뿐이다.” — David Graeber와 David Wengrow, The Dawn of Everything

유인 구조

“사람은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사는 조건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며, 그렇게 얻은 습관을 유전으로 물려준다. 따라서 예속된 채 태어나 살아가고 오랜 노예들의 후손이 된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노예제가 삶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었다. 자유는 불가능해 보였다.” — Errico Malatesta

“어떤 사람의 월급이 그것을 이해하지 않는 데 달려 있다면, 그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게 하기는 어렵다!” — Upton Sinclair, I, Candidate for Governor: And How I Got Licked (1935)

“지금까지 우리는 공공선택론의 관점에서 유인을 분석했다. 공공선택론은 정치 영역의 개인도 그 밖의 개인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 가정은 결국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 정치의 제도적 여과 장치가 궁극적으로 권력의 자리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골라내기 때문이다. 품위 있고 인간적인 사람은 노예 농장의 감독관으로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교도관, 경찰관, 검사, 국경 순찰대원, 장군, 대통령으로 경력을 쌓는 사람들 가운데는 타인에게 재량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폭력적인 권위를 휘두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원칙 있는 사람들이 한동안 이런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권력의 자리를 얻고 지키기 위해 도덕을 굽힐 준비가 된 야심가들에게 빠르게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권력 체제는 단순하지만 끔찍한 결과를 낳는 제도적 여과 장치와 선발 효과를 만들어 낸다. 최악의 사람들이 맨 위에 오른다.” — Nathan Goodman, Abolition: An Economist’s Perspective ๖

“오늘날 노동자들은 각종 규제와 세금, 지식재산권법, 기업 보조금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를 종합하면 잠재적인 다른 고용주가 시장에 들어오거나 노동자가 자영업을 시작하기 어려워진다.” — Sheldon Richman

“현실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가 승인한 독점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규정된다.” — Eric Fleischmann

“나아가 정부가 교환 매개 수단을 독점하면, 지급 능력 대신 부채를 교환을 촉진할 신용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다. 정부는 이 독점을 통해 특권층의 수탈 요구가 먼저 충족될 때까지 교환을 막을 힘도 얻는다.” — Dyer D. Lum

“오늘날 아무도 보지 못하거나 보려 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 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예속은 정부가 신민에게서 거두는 화폐 세금, 곧 토지 등에 부과하는 세금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20장

“정부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해 시민의 부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은밀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몰수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몰수할 뿐 아니라 자의적으로 몰수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가난해지지만 실제로 부유해지는 사람도 있다.” — John Maynard Keynes,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똑같다. 살아남고 번성하려면 부분적인 부족 상태가 영구히 필요하다. 가격을 유지하고, 어떤 조건에서든 일할 배고픈 대중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 Errico Malatesta

“나는 어쩐지 아인슈타인의 뇌의 무게와 굴곡보다,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목화밭과 착취 공장에서 살다가 죽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간다.” — Stephen Jay Gould

“오늘날 범죄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실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범죄를 낳는 것은 죄가 아니라 굶주림이다.” —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노예제, 보호주의, 독점은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옹호자를 찾는다.” — Frédéric Bastiat

“대규모로 약탈할 힘을 가진 계급은 정부를 통제하고 그 약탈을 합법화할 힘도 가진다.” — Eugene Debs

“어떤 사회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약탈을 삶의 방식으로 삼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약탈을 허용하는 법 체계와 찬양하는 도덕률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 Frédéric Bastiat

“합법적인 약탈은 실로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행해질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을 조직하는 계획도 무한하다. 관세, 보호주의, 혜택, 보조금, 장려금, 누진세, 공립학교, 일자리 보장, 수익 보장, 최저임금, 구제받을 권리, 노동 도구를 받을 권리, 무상 신용, 기타 등등이 있다.” — Frédéric Bastiat, The Law

위계

“대부분의 권위는 폭력배의 날것의 힘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정당한’ 권위로 진화한다. 국민국가의 역사가 분명 그러하다. 프리드는 정당성이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결합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정당성의 기능은 ‘공동체의 일부가 휘두르는 집중된 사회적 권력의 존재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특정한 사회 질서, 곧 사회적 권력의 흐름을 나누고 이끄는 특정한 방식에 비슷한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 Harold Barclay, People without Government ๖

“권위나 정부를 없앤다는 것은 사회에서 작용하는 개인적·집단적 힘이나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을 움직이지 않는 별개의 원자 집합으로 줄이는 셈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가능하다 해도 모든 사회를 파괴하고 인류에 치명타를 줄 것이다. 권위를 없앤다는 것은 힘과 영향력의 독점을 없앤다는 뜻이다. 사회의 힘, 곧 사회의 모든 사람이 함께 내는 힘이 소수 개인의 생각과 의지와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는 사태를 없앤다는 뜻이다. 그 소수는 집단적인 힘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다. 다시 말해 한 혁명과 다음 혁명 사이의 미래를 그 순간의 승자들이 이익을 위해 착취하는 조직 방식을 파괴한다는 뜻이다.” — Errico Malatesta

“권위가 있는 곳에는 자유가 없다.” — Pyotr Kropotkin

“워런과 프루동은 노동의 정의를 추구하다 계급 독점이라는 장애물에 마주쳤을 때, 그런 독점이 권위 위에 서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권위를 강화해 독점을 보편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완전히 뿌리 뽑고 반대 원칙인 자유를 온전히 펼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 Benjamin R. Tucker

“위계 조직은 주로 위계적인 통제 구조의 영향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이 서로 연동되도록 강제하기 위해 설계된다. 이상적인 위계에서는 두 ‘노동자’ 사이의 모든 영향과 소통이 공통의 관리자를 거쳐야 한다. 집단 행동의 복잡성이 커질수록 독립적인 영향의 수가 늘고 관리자는 이를 모두 처리하거나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관리자 수를 늘리고 분기 비율, 즉 관리자 한 명이 감독하는 사람 수를 줄이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집단 행동의 복잡성이 개인의 복잡성을 넘어설 때 이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더 직접적인 수평 상호작용을 허용하는 네트워크에는 이런 한계가 없다. 집단 행동의 복잡성이 한 인간의 복잡성을 넘어설 때 위계적 통제는 효과를 잃는다. 위계로 통제되는 체계는 네트워크 체계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집단의 복잡성이 개인의 복잡성에 도달하는 지점에서 복잡성 증가 과정은 위계 구조의 한계에 부딪힌다. 위계 구조는 그 이상의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하며 수평 상호작용이 지배적인 구조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통제 기능을 대신할 수평 상호작용은 위계 구조 안에도 존재해 왔다. 하지만 집단 행동의 높은 복잡성 때문에 위계적 통제 구조가 실패할 때는 그것이 필수가 된다.” — Complexity Rising: From Human Beings to Human Civilization, a Complexity Profile

“권위와 복종에 바탕을 둔 문명에는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단이 없다. 효과적인 소통이 지배 집단에서 예속 집단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사이버네틱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방통행 소통 경로에는 되먹임이 없어 지능적으로 행동할 수 없음을 안다.” — Robert Anton Wilson, “Thirteen Choruses for the Divine Marquis,” Kevin Carson의 The Desktop Regulatory State에서 인용

“개인의 복종 행위는 권위주의 사회의 강함을 떠받치는 동시에 그 약점의 근원이기도 하다.” — Robert Shea와 Robert Anton Wilson, The Illuminatus! Trilogy

“억압받는 이들 사이에 공범이 없다면 억압자는 그토록 강하지 못할 것이다.” — Simone de Beauvoir

“[…] 우리의 주된 적, 전략적 적수는 파시즘이다 […]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 파시즘, 대중의 욕망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그 파시즘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과 머릿속과 일상적 행동 속에 있는 파시즘, 우리가 권력을 사랑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바로 그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파시즘도 적이다.” — Michel Foucault, Anti-Oedipus 서문

“사람들이 자유를 써서 자유를 포기한다면, 그렇다고 노예 신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가? 국민투표로 자신들을 지배할 독재자를 뽑으면 자기들이 만든 독재라는 이유로 여전히 자유로운가? 그의 강제 명령은 결국 자기 투표의 결과라는 이유로 정당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 앞에서 창을 부러뜨려 그 사람의 종이 되는 동아프리카인도 주인을 자유롭게 골랐으므로 여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 Herbert Spencer, The Man Versus the State

“몇 년에 한 번 새 주인을 고를 수 있다고 해서 노예가 덜 노예인 것은 아니다.” — Lysander Spooner, No Treason No. VI: The Constitution of No Authority

“주인을 자유롭게 선출한다고 주인이나 노예가 없어지지 않는다.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고 해도, 그 상품과 서비스가 노동과 공포의 삶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유지한다면, 곧 소외를 유지한다면 자유가 아니다. 그리고 개인이 강요된 욕구를 자발적으로 재생산한다고 자율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통제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만 드러날 뿐이다.” — Herbert Marcuse, One-Dimensional Man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자는 지배자요, 공격자요, 침입자다. 한 사람이 일반 범죄자처럼 다른 한 사람을 침범하든, 절대군주처럼 나머지 모두를 침범하든, 현대 민주주의처럼 모두가 한 사람을 침범하든, 침범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 Benjamin R. Tucker, 1890

“권력을 놓아줄 생각으로 권력을 빼앗는 사람은 없다.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혁명을 지키려고 독재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독재를 세우려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 George Orwell의 Nineteen Eighty-Four에 등장하는 O’Brien

정부

“국가에는 자기 돈이 없듯 자기 힘도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국가가 가진 힘은 사회가 내준 것에, 때때로 이런저런 구실로 빼앗은 것을 더한 전부다. 국가 권력을 얻을 다른 원천은 없다. 따라서 국가가 힘을 넘겨받든 빼앗든 국가 권력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의 힘은 줄어든다. 그에 상응하고 대체로 같은 크기의 사회적 힘이 고갈되지 않으면서 국가 권력만 강화되는 일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 Albert J. Nock ๖

“국가를 규정하는 표지는 권위, 즉 지배할 권리다. 인간의 일차적 의무는 자율성, 즉 지배받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Robert Paul Wolff

“정부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은 오류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정치적 힘을 가진,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 Robert LeFevre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만 지배자만 예외로 두지 않는다. 그들은 때로 자신도 모르게 예외로 둔다. 우리가 그런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몽상가,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 Pyotr Kropotkin

“인간의 타고난 성향이 그토록 나빠 사람들을 자유롭게 놓아두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면, 이 조직자들의 성향은 어째서 언제나 선한가? 입법자와 그들이 임명한 대리인도 인류의 일원이 아닌가? 아니면 자신들은 나머지 인류보다 더 좋은 흙으로 빚어졌다고 믿는가?” — Frédéric Bastiat, The Law

“위험은 특정 계급이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계급에 그 자격이 없다.” — Lord Acton, Mary Gladstone에게 보낸 편지 (1881)

“하지만 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자신의 자유와 주도권을 다른 개인들에게 넘겨야 하는가? 왜 각 사람의 뜻에 맞든 거슬리든 그들에게 주인이 되어 모든 사람의 힘을 자기 방식으로 처분할 권력을 주어야 하는가? 통치자들이 그토록 특별히 뛰어난 사람들이어서, 그럴듯한 근거를 들어 대중을 대표하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 행동하는 것보다 더 잘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가? 그들이 그토록 오류도 부패도 없어서, 그 지식과 선함을 믿고 모두의 운명을 맡기는 일이 조금이나마 신중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한히 선하고 아는 것이 무한히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역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다고 우리가 믿는 일을 가정해 정부가 가장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정부 권력의 소유가 그들의 유익한 영향에 무언가를 더하겠는가? 오히려 그것을 마비시키거나 파괴하지 않겠는가? 통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다뤄야 하며, 무엇보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권력을 유지하고, 친구들을 만족시키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억누르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데 낭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Errico Malatesta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노력, 발명과 발견에서 권위나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전혀 없었거나, 적어도 도움이 되는 역할은 없었다. 그 영역에서 놀라운 일을 이룬 것은 늘 개인이었다. 대개 인간적이든 신성하든 권위의 금지, 박해, 간섭에도 불구하고 이뤘다.” — Emma Goldman, The Individual, Society and the State

“정부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부담으로 살아가려 하는 거대한 허구다.” — Frédéric Bastiat, “Government”

“민주정과 군주정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정치 제도가 그렇게 많이 변하면서도 어떻게 그대로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국 군주정이 확대되고 혁명을 거치고, 바다를 건너 식민지로 뻗어 그 식민지가 독립국이 됐다가 강력한 국가가 되기까지, 그 모든 발전을 잠깐만 살펴봐도 국가의 기능과 태도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고 보존됐음을 알 수 있다.” — Randolph Bourne, The State

“국가는 사회가 개인에게 허용하지 않는 자유들을 모두 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Mikhail Bakunin

“개인은 국가와 흥정할 수 없다. 국가는 힘이라는 화폐만 인정하고 그 돈도 스스로 발행한다.” — Ursula K. Le Guin, The Dispossessed (1974)

“모든 폭정 중에서 피해자를 위해 행사하는 폭정이 가장 억압적일 수 있다. 전능한 도덕적 참견꾼 아래 사느니 강도 남작 아래 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강도 남작의 잔인함은 때로 잠들고 탐욕도 언젠가 채워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다며 괴롭히는 사람들은 끝없이 괴롭힌다. 양심의 승인을 얻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 C. S. Lewis, “The Humanitarian Theory of Punishment” (1949)

“법은 그 눈부신 평등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다리 아래에서 자고, 거리에서 구걸하고, 빵을 훔치는 일을 금지한다.” — Anatole France

“다수가 소수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사실상 모든 정부를 두 무리의 사람들 중 누가 주인이 되고 누가 노예가 될지를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만든다. 그 경쟁이 아무리 피비린내 나더라도, 인간이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한 본질적으로 영원히 끝날 수 없다.” — Lysander Spooner, No Treason

“모든 통치 형태는 실패다. 전제정은 전제군주를 포함한 모두에게 부당하다. 그 군주도 아마 더 나은 일을 하도록 태어났을 것이다. 과두정은 다수에게 부당하고, 폭민정은 소수에게 부당하다. 한때 민주정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민주정이란 그저 인민이 인민을 위해 인민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다. 이제 밝혀졌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모든 권위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과 그 권위의 지배를 받는 사람 모두의 존엄을 훼손한다.” —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마녀라는 이유로 불타고, 교수형을 당하고, 끓는 물에 죽고, 다른 방법으로 처형당한 수만 명을 생각해 보라. 이단이라는 이유로 죽은 수백만 명을, 반역 때문에 고통받은 수천 명의 고귀한 희생자를 생각해 보라. 인류가 시작된 이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죄목으로 불, 고문, 처형대, 형틀, 지하 감옥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세계 지배자들의 힘과 잔혹함으로 흘린 피의 바다와 눈물의 강을 생각해 보라. 힘없고 약하고 불운한 사람들에게 쌓아 올린 잔인함, 고문, 고통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처벌이 좋은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라. 설령 폭력이 범죄를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지배자들의 잔혹함, 고통, 피, 범죄는 그들이 복수해 준다고 주장해 온 약하고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잘못보다 산처럼 높이 쌓였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줄어들지 않는다.

과거의 유죄 선고가 정당했는지 의심하면서 오늘의 판결은 의롭다고 믿는 것은 그저 미친 짓이다. 어떤 유죄 선고도 정당하지 않고 어떤 판결도 의롭지 않다. 모든 폭력과 강제력은 잔인하고 부당하며 야만적이다. 사람들의 판단으로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 Clarence Darrow, Resist Not Evil

“정부는 사회가 무너지길 원할 수 없다. 그러면 정부와 지배 계급이 착취의 원천을 잃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식적인 개입 없이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게 둘 수도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굶주리게 두는 재산 소유자들을 보호하는 데만 쓰인다는 것을 곧 깨닫고, 정부와 재산 소유자 둘 다 서둘러 없애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Errico Malatesta

“백성은 왜 굶주리는가? 지배자들이 세금으로 거둔 돈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굶주린다. 백성은 왜 반항하는가? 지배자들이 너무 많이 간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항한다. 백성은 왜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가? 지배자들이 삶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사람은 목숨을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안다.” — Lao Tzu, Tao Te Ching 75장, Gia-Fu Feng와 Jane English 번역

“그러므로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1. 이른바 ‘정부’ 손에 돈을 쥐여 주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서 돈을 더 빼앗고 자신을 그 자의적인 의지에 예속시키는 데 쓰일 칼을 그 손에 쥐여 주는 것이다. 2. 처음부터 동의 없이 돈을 가져가는 자들은, 그 사람이 나중에 요구에 저항할 경우 그 돈을 다시 그의 약탈과 예속에 사용할 것이다.” — Lysander Spooner, No Treason

“혁명의 공식이 직접입법도, 직접정부도, 간소한 정부도 아니라 무정부라고 우리는 두려움 없이 결론 내릴 수 있다. 군주정도 귀족정도 아니며, 국민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스스로를 국민이라 부른다 해도 어떤 형태의 정부든 내포한다면 민주정조차 아니다. 권위도 정부도 없다. 대중적인 권위와 정부조차 없다. 그것이 혁명이다. 직접입법, 직접정부, 간소한 정부는 아무리 되살리려 애써도 소용없는 낡은 거짓말이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단순하든 복잡하든, 인민을 다스리는 것은 언제나 인민을 속이는 것이다. 언제나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고 자유를 끝장내는 허구다. 오직 정의만이 답할 수 있는 문제를, 정의 대신 무력으로 잘라 버리는 것이다. 헌신과 순진한 믿음을 디딤돌로 삼는 집요한 야망이다…” — Pierre-Joseph Proudhon, The General Idea of the Revolution in the Nineteenth Century (1851)

“정부가 없다는 것이 정말 부정적인 의미의 무질서를 뜻한다고 해도—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그 어떤 무정부적 무질서도 정부가 인류를 몰고 간 처지보다 더 나쁠 수 없다.” — Leo Tolstoy, Patriotism and Government

“우리가 정부라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조직된 폭력 말고 다른 무엇인가? 법은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힘으로 강제한다. 모든 정부와 모든 법과 권위는 결국 힘과 폭력, 처벌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위에 선다.” — Alexander Berkman

“국가는 자신의 폭력을 법이라 부르고 개인의 폭력은 범죄라 부른다.” — Max Stirner, The Unique and Its Own

“한때 범죄는 항의의 외침처럼 외로웠다. 이제는 과학처럼 보편적이다. 어제는 재판받았지만 오늘은 법을 정한다.” — Albert Camus, The Rebel

“당신은 정부가 죽이고, 몰수하고, 가둘 권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개인이 정부가 늘 하는 일을 저지른다면 그를 살인자, 도둑, 악당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폭력이 ‘합법적’이기만 하면 승인하고 따른다. 그러니 당신이 반대하는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폭력을 ‘불법으로’ 쓰는 것이다.” — Alexander Berkman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금지된다. 그래서 살인자들은 모두 처벌받는다. 다만 아주 많은 사람을 나팔 소리에 맞춰 죽인 경우는 제외다.” — Voltaire

“통치받는다는 것은 그럴 권리도 지혜도 덕도 없는 자들에게 감시받고, 검사받고, 염탐당하고, 지시받고, 법에 쫓기고, 번호가 매겨지고, 규제받고, 등록되고, 세뇌되고, 설교를 듣고, 통제되고, 조사받고, 평가받고, 값이 매겨지고, 비난받고, 명령받는다는 뜻이다. 통치받는다는 것은 온갖 활동과 거래마다 기록되고, 등록되고, 계산되고, 과세되고, 도장이 찍히고, 측정되고, 번호가 매겨지고, 사정되고, 면허받고, 허가받고, 경고받고, 저지되고, 금지되고, 교정되고, 수정되고, 처벌받는다는 뜻이다. 공익을 구실로, 공동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내고, 훈련받고, 털리고, 착취당하고, 독점당하고, 갈취당하고, 쥐어짜이고, 속고, 강도질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아주 조금만 저항하거나 불평 한마디만 해도 탄압받고, 벌금을 내고, 비방당하고, 괴롭힘당하고, 추적당하고, 학대당하고, 곤봉으로 맞고, 무장 해제되고, 묶이고, 목이 졸리고, 감옥에 갇히고, 재판받고, 유죄 선고를 받고, 총에 맞고, 추방되고, 희생되고, 팔리고, 배신당한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조롱당하고, 비웃음을 사고, 멸시당하고, 모욕당하고, 불명예를 뒤집어쓴다. 이것이 정부다. 이것이 정부의 정의요 도덕이다.” — Pierre-Joseph Proudhon

“정부는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위험한 제도다. 역사 내내 어떤 개인이나 개인들의 집단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했다. 사람들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고, 강제 노동과 강제수용소에 보냈으며, 노동의 결실을 일상적으로 약탈했다. 개인 범죄자와 달리 정부는 사람을 체포하고 재판할 수 있다. 개인 범죄자와 달리 한 사람을 완전히 에워싸 삶의 모든 면을 지배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는 나라를 떠나는 길밖에 없고,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조차 금지된다.” — John Hospers

힘의 균형

“모든 인간,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자유로울 때에만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타인의 자유는 내 자유를 부정하거나 제한하기는커녕 그 자유의 필수 전제이자 확인이다.” — Mikhail Bakunin ๖

“자유를 옹호하는 주장은 인간의 이성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인 조직에 반대하는 주장이 아니다. 배타적이고 특권적이고 독점적인 모든 조직,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지 못하도록 강제를 쓰는 일에 반대하는 주장이다.” — Friedrich August von Hayek

“분산에는 자율성이 따른다. 자기 주도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다. 자율성은 개인, 동네, 운동, 지역 전체 등 어떤 규모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유로우려면 바로 주위 환경과 일상의 세부 사항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급 능력이 클수록 자율성은 더 안전하다. 반드시 모든 필요를 혼자 채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의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형태의 상호 의존을 뜻할 수도 있다. 어느 한 제도도 자원이나 사회적 관계에 접근할 길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자율성을 키우는 사회에는 엔지니어가 말하는 중복성이 필요하다. 삶의 모든 면에 폭넓은 선택지와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 CrimethInc., From Democracy to Freedom

“행정 조직이 커지고 힘을 키울수록, 그 조직의 추가 성장과 통제에 저항할 나머지 사회의 힘은 줄어든다.” — Herbert Spencer, The Man Versus the State

“네트워크의 지식 공유가 만들어 내는 상승효과는 두 가지 뜻 모두에서 네트워크의 재산이자 특성이다. 이는 네트워크와 위계 사이 힘의 균형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대규모 조직에 맞서는 개인과 작은 집단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힘을 주었다. 위계에서는 구성원 사이나 지역 접점 사이의 모든 소통이 제한된 수의 중앙 접점을 거쳐야 한다. 한 구성원이나 지역 접점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되도록 허용되는 것은 중앙 접점을 통제하는 자들의 배포 기준에 맞는 소통뿐이다. 위계 안에서 전달할 힘을 가진 접점은 소수다. 이 연결 구조를 ‘하나에서 다수로’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분산된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접점에 전달할 힘이 있고, 두 접점은 중앙 접점을 거치거나 그 통제자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구성원들이 중앙 접점의 통제자를 고르기만 하는 대신 ‘누군가 제안하면 참여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해당 행동의 범위는 그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지는지에 달려 있다.’ 다수결 민주주의는 결정권을 서로 빼앗아야 하는 ‘희소성 체계’다. ‘집단은 이 여과 장치와 저 여과 장치, 이 대표자와 저 대표자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한다.’ 반면 분산된 네트워크의 결정권은 서로 빼앗지 않아도 된다. 개인의 결정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결정할 능력을 가로막지 않는다. ‘다수가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반대해 행동하더라도, 그 제안이 실행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Kevin Carson, The Desktop Regulatory State

“둘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하나의 강함은 다른 하나의 약함이다. 사회를 강화하려면 국가를 약화시켜야 한다. 온갖 전체주의자는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지배할 수 없는 사회 제도는 언제나 파괴하려 한다.” — Colin Ward, The State and Society

“여기에는 국가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이점을 주는 중요한 비대칭이 있다. 물론 국가는 강력한 감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 능력은 중앙에서 위계적으로 지휘되고, 비교적 적고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는 운영자 집단을 통해서만 쓸 수 있다. 그들은 70억 명의 인간이라는 건초더미에서 건초 색깔 바늘을 찾아 감시하려 한다. 세계의 네트워크 저항 운동이 바로 그 바늘이다. 바늘이 쇠스랑을 든 사람을 보고 알아보는 일은 쇠스랑을 든 사람이 바늘을 보고 알아보는 일보다 훨씬 쉽다. 쇠스랑 든 사람보다 바늘이 훨씬 많다. 그리고 바늘들에는 자기 도구도 있다. 값싸고 쓰기 쉽고 거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구다. 앞서 말한 운영자조차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바늘이 되기로 결심하면 쓸 수 있다.” — Thomas Knapp, Kevin Carson이 인용

“분산주의자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생산의 분산을 장려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작은 도구와 기계로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전부 또는 대부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정을 키운다.” — Mildred Loomis

“사실 지구는 더는 이 공격을 견딜 수 없다. 이것이 공기를 오염시키고, 물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먹거리를 오염시키는데 우리는 더는 이런 일이 계속되게 둘 수 없다. [...]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지구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다국적 기업 정부가 아니라 지구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지구다. 우리에게는 지구가 필요하다. 지구 없이는 우리 삶도 더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에 맞서야 한다.” — John Trudell, “Take Back the Earth”, 추수감사절 연설 (1980)

“가장 열렬한 혁명가에게 절대 권력을 쥐여 주면 한 해 안에 차르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 Mikhail Bakunin

“분명 지상의 ‘국가’는 그런 방식으로 시작한다. 국가가 어떤 ‘계약’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환상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명령할 수 있는 사람, 본래 ‘주인’인 사람, 행동과 몸짓에 폭력을 앞세우고 나오는 사람이 계약을 맺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런 존재와는 협상할 수 없다.” — Friedrich Nietzsche, The Genealogy of Morals

“[…] 국가의 범죄성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최초의 약탈자 집단이 모여 국가를 세웠을 때 시작됐고, 국가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국가는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이고 근본적으로 범죄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어떤 사회적 목적을 위해 생겨났다는 생각은 전혀 역사적 근거가 없다. 국가는 정복과 몰수, 곧 범죄에서 비롯됐다. 재산을 소유하며 착취하는 계급과 재산 없이 의존하는 계급으로 사회를 나누어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생겨났다. 다시 말해 범죄적 목적으로 생겨났다.” — Albert Jay Nock, “The Criminality of the State” (1939)

“초기 국가는 사실, 앞으로 보겠지만, 주민을 붙잡아 두는 데 자주 실패했다. 전염병과 생태 환경과 정치의 측면에서 유난히 취약했으며 붕괴하거나 분열하기 쉬웠다. 그러나 국가가 자주 해체된 것은 동원할 수 있는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전쟁 포로, 계약에 묶인 예속 노동, 신전 노예, 노예 시장, 노동 식민지로의 강제 이주, 죄수 노동, 공동체적 노예제(가령 스파르타의 헤일로타이)를 포함해 자유롭지 못한 노동을 광범위하게 이용했다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 James C. Scott, Against the Grain: A Deep History of the Earliest States (2017)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을 감독하고 보호하는 영혼 없는 정치 관료제의 힘이 계속 커지면서 인간 사이의 협력에 점점 더 큰 장애물이 놓인다. 삶의 모든 행위에서 많은 사람과 온 국민의 복지를 소수의 이기적인 권력욕과 경제적 이익에 희생시키는 체계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유대를 해체하고 만인이 만인과 끊임없이 싸우게 만든다. 이 체계는 오늘날 근대 파시즘과 전체주의 국가라는 생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사상적·사회적 반동에 길을 터주었다. 이 반동은 지난 세기의 절대군주가 가진 권력 집착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을 국가 통제 아래 두려 한다.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은 국가를 통해, 국가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가 새로운 정치 신학의 후렴이 되었다. 여러 형태의 교회 신학에서 신이 전부이고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듯, 이 현대의 정치 신조에서는 국가가 전부이고 시민은 아무것도 아니다. ‘신의 뜻’이라는 말이 특권 계급의 뜻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듯이, 오늘날 국가의 뜻 뒤에는 그 뜻을 제 방식대로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요할 사명을 자처하는 자들의 이기적인 이익만 숨어 있다.” — Rudolf Rocker

자생적 질서

“자유는 질서의 딸이 아니라 어머니다.” — Pierre-Joseph Proudhon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도를 따르는 법을 배워라. 통제하려 들지 마라. 고정된 계획과 개념을 놓으면 세상이 스스로 다스려질 것이다. 법과 제약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가난해진다. 무기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덜 안전하다. 보조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자립 능력을 잃는다. 규칙과 규제가 많아질수록 도둑과 강도가 늘어난다. 그러므로 스승은 말한다. 내가 법을 놓으니 사람들이 정직해진다. 내가 경제를 놓으니 사람들이 넉넉해진다. 내가 종교를 놓으니 사람들이 평온해진다. 공동선에 대한 모든 욕망을 놓으니 선이 풀처럼 흔해진다.” — Lao Tzu, Tao Te Ching 57장

“우리 일을 조직할 때 가능한 한 사회의 자발적인 힘을 많이 이용하고 강제에는 가능한 한 덜 의존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 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사회의 경제적 문제가 주로 시간과 장소의 구체적인 상황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최종 결정은 그런 상황을 잘 알고, 관련 변화를 직접 알며, 그것에 대응하는 데 당장 쓸 수 있는 자원도 아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듯하다.” — Friedrich A. Hayek,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이미 보았듯, 대규모 관료제의 필연적으로 단순한 추상 개념은 자연이나 사회 과정의 실제 복잡성을 결코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그들이 쓰는 범주는 지나치게 거칠고 정적이며 도식적이어서 묘사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 James C. Scott, Seeing Like a State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지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직접 힘을 쓰든 더 간접적인 수단(위협, 두려움, 다른 형태의 유인 조작을 통한 ‘넛지’)을 쓰든, 그 체계의 적응력은 떨어진다.” — Andrew Kemle

“중앙 설계보다 자생적 질서를 옹호하는 전통적인 논거는 지식이 흩어져 있을 때 관련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은 분산적이고 진화적인 과정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생적 질서는 ‘[…] 누구도 그 전체를 다 갖고 있지 않은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 F. A. Hayek, Law, Legislation and Liberty, Volume 1: Rules and Order

“질서란 의도적으로 배열한 결과로만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에게는, 복잡한 조건에서 결정을 분산할 때 질서를 더 효과적으로 이루고 미지의 것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으며 권한을 나누면 전체적인 질서의 가능성이 실제로 커진다는 말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산은 실제로 더 많은 정보를 고려하게 한다.” — Friedrich Hayek

“광범위한 실증 연구는 개인들이 공유 자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다양한 환경, 어떤 조건에서 그런 해결이 오래 지속되는지, 더 큰 규모의 제도적 장치가 개인이 더 작은 규모에서 문제를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해결할 능력을 어떻게 강화하거나 약화하는지를 기록한다.” — Elinor Ostrom, “Beyond Markets and States: Polycentric Governance of Complex Economic Systems”

“자생적 질서는 독립적이며 대등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에서 생겨난다. 그들의 행동은 긍정적·부정적 되먹임을 만들고, 이것이 나중에 행동하는 사람들이 각자 생각한 계획을 추구할 때 길잡이가 되며, 그리하여 되먹임 과정이 이어진다. 각 사람은 네트워크의 한 접점이며 되먹임으로 연결된다. 각 접점은 스스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되먹임은 전체 체계를 다 알지 않아도 그 안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양을 최소화한다.” — Gus diZerega, Kevin Carson의 The Desktop Regulatory State에서 인용

“사회학 용어로서 스티그머지는 주로 위키, 공동 블로그, 서로 연결된 소규모 단위로 이루어진 ‘지도자 없는’ 조직과 관련한 네트워크 조직 형태를 가리킨다. 스티그머지에 따른 협력이 컴퓨터와 디지털 네트워크로 확장되면 처리 능력이 크게 늘어난다. 스티그머지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이 규모의 한계 없이 협력할 수 있게 한다.

스티그머지는 전통적인 뜻의 ‘집단주의’가 아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공동의 일을 하려면 집단을 대표하는 큰 조직과 위계를 통한 개인 노력의 행정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스티그머지는 수많은 개인의 공동 행동에 드는 거래 비용을 없앤다는 점에서 집단주의의 궁극적인 실현이다. 동시에 모든 행동이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이고 ‘집단’은 개인 행동의 총합일 뿐이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의 궁극적인 형태다. 각 개인은 집단의 허락 없이 적절하다고 보는 어떤 혁신이든 구상할 자유가 있고, 모든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다. 스티그머지는 개인이 집단 의지에 묶일 필요를 없애고 운영의 단위를 개인으로 줄여 동의라는 이상을 온전히 실현한다.

스티그머지 조직은 모듈식 조립 구조를 낳는다. 모듈식 구조가 체계의 학습·진화·적응 능력을 바꾸기 때문에 이런 구조는 어디에나 있다. 적은 수의 기본 블록을 섞고 다시 결합하면 엄청나게 다양한 복잡한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소수의 다른 개인들과 각각 상호작용할 수 있는 많은 모듈식 개인에게서 시작해, 몇 가지 간단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문법에 따라 서로에게 행동하면, 적절한 조건에서 그 개인들은 빠른 상전이를 겪을 수 있다.” — Kevin Carson, The Desktop Regulatory State ๖

“정부 없이 사회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하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잠시 살펴보면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오늘날에도 사실 정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대중을 착취하거나 특권층을 지키거나, 마지막으로 정부 도움 없이, 흔히 정부의 방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루어진 일을 아주 불필요하게 승인할 때뿐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일하고, 교환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도덕이나 위생의 일반적인 규칙 가운데 원하는 것을 따르고, 과학과 예술의 발전을 이용하며, 무수한 공동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간섭이 없는 바로 그런 일들이 가장 잘 번성하고 분쟁을 가장 적게 낳는다. 모두의 바람에 가장 쓸모 있고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으로 맞춰지기 때문이다.” — Errico Malatesta

“정부라는 부정적인 힘이 사라지면, 사회는 그때의 힘과 능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교육을 널리 퍼뜨리고 싶은 배운 사람들이 있다면 학교를 조직하고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쓸모와 기쁨을 사람들이 느끼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없거나 극히 적다면 정부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도 실제로 그러듯 그 소수마저 교육 현장의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일에서 떼어 내 경찰 제도의 도움으로 무엇을 강요할지 위에서 지시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지적이고 열정적인 교사는 정치인이 된다. 자기 취향을 강요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쓸모없는 기생자가 된다.” — Errico Malatesta

“정부 기계 아래, 정치 제도의 그늘 속, 정치인과 성직자의 눈 밖에서 사회는 천천히 조용히 스스로 유기적인 조직을 이루고, 자신의 생명력과 자율성을 드러내는 새 질서를 짓고 있다. … 우리는 혁명의 공식이 직접입법도, 직접정부도, 간소한 정부도 아니라 무정부라고 두려움 없이 결론 내릴 수 있다.” — P.J. Proudhon, 1851

“미움받는 국가 권력이 더 이상 개인, 결사, 코뮌, 지역과 구역에 함께 살라고 강요하지 않을 때, 그들은 오늘날 국가의 억압적이고 소모적인 멍에 아래 강요받는 결합보다 훨씬 더 가깝게 연결되고, 더 살아 있고 더 실제적이고 더 강한 결합을 이룰 것이다.” — Pierre-Joseph Proudhon

“혼돈을 받아들이는 의사결정은 사회가 분산된 네트워크로서 자발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우고, 갈등을 삶의 건강한 힘으로 허용하며, 총회나 명령 같은 형식적이고 남성적인 영역을 훨씬 넘어 삶의 모든 순간에 스며드는 다양한 결정의 공간을 장려한다. 인간 네트워크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서로 다르고 심지어 충돌하는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면서, 모든 결정권자가 지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에 따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공동의 의식도 장려한다. 인간에게는 큰 규모에서 혼돈을 받아들이는 의사결정을 활용할, 진화의 시험을 거친 능력이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결정을 단일한 구조에 독점해 동료 시민들을 통제하려고 그들을 영원히 어린아이처럼 취급하고 싶은 이들뿐이다.” — Peter Gelderloos, Worshiping Power

“국가가 영원히 남아 개인과 지역의 삶을 짓누르고,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를 차지하며, 전쟁과 국내 권력투쟁과 한 폭군을 다른 폭군으로 바꿀 뿐인 궁정 혁명을 몰고 오는 길, 그 발전의 끝에 필연적으로 … 죽음이 있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를 파괴하고, 개인과 집단의 활발한 주도권 및 자유로운 합의를 원칙으로 수천의 중심에서 새 삶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 — Pyotr Kropotkin

자유로운 결사

“자, 둘 중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 자유 아래에서는 사회마다 서로 다른 사회적 방식이 생겨 어떤 곳은 공산주의적이고 다른 곳은 정반대가 되며, 필연적으로 경쟁이 일어나 결과를 통해 무엇이 가장 나은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경쟁을 짓누르고 공산주의를 세워 자유를 부정하며 진보에 맞서야 한다. 벗이여, 세상에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세우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기회를 제한하는 것들을 없애는 일이다.” — Voltairine de Cleyre, The Individualist and the Communist ๖

“모든 구성원이 과거에 축적된 보물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상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 통치받는 자와 통치하는 자, 지배받는 자와 지배하는 자를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내부에서 어느 정도 조화로운 공존을 세우려 한다. 그 방법은 사회를 대표한다고 허구로 가정한 권위에 구성원 모두를 복종시키거나 획일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주도권, 행동, 결사를 펼치도록 북돋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측면과 정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목적에서 개인성의 가장 완전한 발전과 자발적인 결사의 가장 높은 발전을 결합하려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바뀌는 결사들은 스스로 지속할 요소를 품고, 모든 사람의 여러 열망에 가장 잘 응답하는 새 형태를 끊임없이 취한다.” — Peter Kropotkin

“이처럼 ‘국가’라는 말은 특정한 사회, 특정한 영토에 모여 사는 특정한 인간 집단을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다 […] 단순히 사회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국가라는 말에 이런 뜻들이 붙어 있기 때문에, 반대자들은 아나키스트가 모든 사회적 유대와 공동의 노동을 없애고 모든 사람을 고립된 상태에서 살게 하려 한다고 믿거나, 아니 믿는 척한다 […] 이런 까닭에 우리는 ‘국가의 폐지’ 같은 표현을 되도록 적게 쓰고, 그 대신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정부의 폐지’를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 Errico Malatesta

“자유는 사람들을 강제로 집어넣는 상자가 아니다. 자유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영원히 말할 뿐이다.” — Karl Hess

“개인은 삶에서 참으로 실재하는 존재다.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인 개인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나 ‘국민’이라고 불리는 추상물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개인들이 모인 것일 뿐이다.” — Emma Goldman, “The Place of the Individual in Society” (1940)

“나는 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나 다른 무엇의 것인가? 내가 지는 사회적 의무는 내 뜻으로 들어갔고 원하면 떠날 수 있는 수많은 비공식적이고 겹쳐지는 사회 집단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입하지 않은 어떤 존재에 대한 것인가…” — Colin Ward, The State and Society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원하는 자유는 실천에서는 반드시 약자의 억압으로 바뀌는 절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추상적인 자유가 아니다. 현실의 자유, 실현 가능한 자유, 곧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음을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자유다.” — Errico Malatesta

“따라서 정말 자유로운 사회라면 한 형태의 공산주의에서 다른 형태로, 거기서 온갖 개인주의 형태로, 또 그다음으로 자유롭고 쉽게 바뀌는 것이 가장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어떤 집단이 이를 막고 한 체제가 우세하게 하려 한다면, 혁명가들이 현 체제에 맞서 싸우듯 그들과 격렬하게 싸울 것이다.” — Max Nettlau

“상호주의 이론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장 잘 이루는 수단이 개인의 이익을 가장 크게 키우는 수단과 같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활동이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한 제약에서 벗어나는 자유, 인간의 기회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모든 요인의 제거, 개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활동을 위해 필요에 따라 결사를 만드는 자발적인 사회 조직이 그것이다. 요컨대 특별한 특권과 국가가 보호하는 독점을 배제하는 조건에서 재화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서로 교환하는 일이다.” — Clarence Lee Swartz, What Is Mutualism?

“자유지상주의는 위에서 아래로 강요할 수 없다. 자유지상주의를 강요하는 데 실패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다.” — Samuel E. Konkin III

“인류는 온갖 정부를 시험하고 ‘개인에게 복종을 강제하면서도 자신도 집단에 복종해야 하는 정부’라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 끝에, 이제 모든 형태의 정부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같은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이해를 통해 조직의 필요에 응답하려 한다.” — Pyotr Kropotkin

상호부조

“우정은 지구를 삼킬 만큼 커질 수 없다. 우정은 언제까지나 작고, 개인적이고, 친밀하고, 의도적이고, 자발적이며, 분산되어 있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강점이다. 우정은 언제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있게 하면서도 개성, 마음속의 안전한 공간, 자신이 누구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명료함을 늘 지키게 한다. 공동체를 세우는 대신 친구를 사귀면 익명의 더 넓은 사회가 내리는 명령과 이른바 공동선이 마음을 흐릴 필요가 없다.” — Against Community Building, Towards Friendship ๖

“인간만이 이처럼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라면, 그것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아는 모든 것과 정면으로 어긋남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그토록 무방비였던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서로 돕는 데서가 아니라 종의 이익은 돌보지 않는 무모한 개인적 이득 경쟁에서 보호와 진보의 길을 찾았다면 말이다. 자연의 통일성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주장은 도무지 변호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믿기 어렵고 철학적으로 빈약한 주장인데도 언제나 지지자는 있었다. 인류를 비관적으로 보는 작가들이 늘 있었다. 그들은 제한된 자기 경험으로 피상적으로 인간을 알았고, 역사에 대해서는 전쟁, 잔인함, 억압을 끊임없이 살피는 연대기 작가들의 이야기와 그 밖의 극히 적은 것만 알았다. 그러고는 인류가 늘 서로 싸울 준비가 된 존재들의 느슨한 집합일 뿐이며, 어떤 권위가 개입해야만 싸움을 막을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 Pyotr Kropotkin,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미안하지만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누구도 지배하거나 정복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을 돕고 싶다.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우리 모두 서로 돕고 싶어 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 아니라 행복에 기대어 살고 싶다.” — Charlie Chaplin, The Great Dictator 마지막 연설 (1940)

“연대는 어떤 면에서 자선의 반대다. 자선은 도움을 주면서도 집단 사이의 위계 관계를 강화한다. 부자들이 자선에 돈을 내면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자원을 나누기 위해 조직하면 그것은 연대의 실천이다.” — Life Without Law

“연대는 이처럼 우리가 자신의 자유를 얻고 지킬 수단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는 함께 일하기로 합의한다. 서로 나누기로 합의하면 선택지가 늘어 더 적게가 아니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상호부조는 내 이익에 맞는다. 상호 존중과 사회적 평등에 바탕을 두고 다른 사람과 합의하는 것이 내게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지배한다면 지배가 가능한 조건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나 역시 지배당할 가능성이 크다.” — An Anarchist FAQ

“백인 형제들이 우리를 문명화하러 오기 전에는 감옥이 없었다. 그래서 범죄자도 없었다. 자물쇠와 열쇠가 없었기에 도둑도 없었다. 누군가 너무 가난해 말이나 티피나 담요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주었다. 우리는 너무 미개해서 개인 소유물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물건을 갖고 싶었던 것은 남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었으므로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잴 수도 없었다.” — John Fire Lame Deer, Lame Deer, Seeker of Visions

“개인의 이 고유한 힘이 다른 개성과의 협력으로 강해졌을 때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냈는가 … 내부의 싸움과 투쟁이 아닌 협력이 종의 생존과 진화에 기여했다 … 상호부조와 자발적 협력만이 자유로운 개인과 결사의 삶을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다.” — Emma Goldman, Red Emma Speaks, 118쪽

“노동자 소유 기업과 소비자 협동조합도 시장의 일부다. 상호부조 결사와 무료 진료소도 시장의 일부다. 자발적인 노동조합, 합의에 따른 코뮌, 그 밖에 자본주의의 현 상태에 대한 셀 수 없는 대안도 그렇다.” — Charles Johnson, Markets Not Capitalism

“상호부조와 직접행동에 참여하면 국가 구조 때문에 원자화된 사회를 다시 살리는 연대가 생긴다.” — Joseph Parampathu, Creative Destruction: Rethinking Failure after the State (2021)

“수직적 아고리즘에는 지역 교환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이를 만들기, 도시 농업, 뒷마당 정원, 농산물 직거래 장터, 경찰을 대신할 대안 지원하기, 개인 간 분산 기술 지원하기가 포함될 것이다. 이런 수직적 조치에는 국가 화폐의 사용이 들어갈 수 있어서 완전한 대항경제 활동은 아닐 수 있지만, 국가와 기업 계급에 대한 의존에 도전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다른 수직적 조치는 화폐 교환과 직접 관계가 없어도 의존에 맞선다.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현 상태를 흔들고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는 기술을 널리 알리는 일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 Derrick Broze, Vertical and Horizontal Agorism

“이렇게 ‘지역별로 묶인 독립 코뮌과 사회적 기능에 따라 묶인 거대한 노동조합 연합체’가 발달할 것이다. 두 조직은 서로 얽혀 사회의 필요를 채우도록 서로를 지원한다. 여기에 ‘개인적 친화성에 따른 집단, 곧 무수하고 한없이 다양하며 오래가거나 잠시 스쳐 가기도 하고, 순간의 필요에 따라 가능한 모든 목적을 위해 생겨나는 집단’이 더해진다. 이 ‘세 종류의 집단’은 ‘모든 사회적 필요, 즉 소비, 생산과 교환, 통신, 위생 시설, 교육, 공격에 맞선 상호 보호, 상호부조, 지역 방어, 그리고 과학·예술·문해·오락의 필요까지 충족’할 것이다.” — Pyotr Kropotkin

“경찰의 괴롭힘과 도시 조례로 빈곤을 범죄화하는 것은 날마다 삶을 추스르려 애쓰는 집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역효과를 낸다. 우리는 사회의 평등을 더 키우기 위해 공동체에서 계속 음식을 나누고, 집 없는 사람들 및 더 나은 미래를 찾는 다른 조직들과 연대를 쌓아 갈 것이다.” — Food Not Bombs

비폭력

“억압받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소수의 억압자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앞의 일을 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면 소수는 그들의 희망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 밖의 이유로 그들을 겁주고 싶지는 않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행복이다. 수천 년에 걸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도대체 어떤 복수가 가능하겠는가?” — William Morris ๖

“방법으로서의 비폭력 행동은 비폭력 사회라는 목표와 양립한다. 목표를 반영하는 방법을 쓰는 것을 예시적 실천이라고 한다. 방법이 목표를 미리 보여 준다. 다시 말해 목표를 미리 예고하거나 재현한다. 예시적 실천은 추구하는 것에 대한 훈련과 경험을 준다.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목표의 일부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노력이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목표가 조직된 폭력이 없는 사회라면 비폭력 행동에는 이 모든 이점이 있다. 폭력을 쓰지 않고 살아 보는 경험을 주고, 운동이 실패해도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줄이며, 노력의 방향이 비폭력으로 향하게 한다.” — How Nonviolence is Misrepresented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폭력, 즉 물리적 힘은 인간 사이 투쟁의 가장 잔혹한 형태로, 인간을 심각하게 타락시킨다. 그 본성상 인간의 가장 좋은 감정을 질식시키고, 반사회적인 모든 성질, 곧 흉포함, 증오, 복수심, 지배와 폭정의 정신, 약자에 대한 경멸과 강자에 대한 굴종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이 해로운 경향은 좋은 목적에 폭력을 쓸 때도 생긴다. […] 온갖 억압에 반항하고 각 사람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아나키스트들도 단순한 억압에 대한 저항을 넘어 차례로 억압이 되는 폭력 행위는 본능적으로 꺼려야 하는데, 그들 역시 잔혹한 힘의 심연에 빠질 수 있다. […]” — Errico Malatesta, Violence as a Social Factor (1895)

“인간성을 거스르는 흉포한 감정을 용인하고 운동의 전술로 삼아 원칙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일은 … 악이며 반혁명적이다.” — Errico Malatesta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동안 미국의 폭력은 42퍼센트 늘었다.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 지도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우리라고 왜 지키겠는가? 정부가 폭탄으로 다른 나라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왜 권총으로 서로를 위협하지 말아야 하는가? 지도자들이 지구를 유린한다면 이웃을 유린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지도자들은 공포와 폭력의 분위기를 만든다. 미국인들이 서로 죽이고 빼앗고 불구로 만들 때 왜 놀란 듯 구는가?” — Philip Berrigan, Fighting the Lamb’s War: Skirmishes with the American Empire (1996)

“국가는 시민들에 맞서 경찰력으로 유지된다. 폭력 속에서 구상되고 폭력으로 지탱되는 국가는 진정한 평화를 결코 이루지 못한다.” — Philip Berrigan, Fighting the Lamb’s War: Skirmishes with the American Empire (1996)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일들인 전쟁, 집단학살, 노예제는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서 나왔다.” — Howard Zinn,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n Ideology

“세상의 가장 큰 범죄는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이 저지른다. 폭탄을 투하하고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은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 Banksy, Wall and Piece

“더는 섬기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그러면 즉시 자유로워진다. 폭군을 넘어뜨리려고 손을 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더는 그를 떠받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받침대가 뽑혀 나간 거상처럼 제 무게로 쓰러져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 Étienne de La Boétie, Discourse on Voluntary Servitude

“정부의 폭력 행사 능력은 반란 세력을 훨씬 능가한다. 실제로 폭력 반란은 반란 세력의 폭력 때문에 탄압이 필요하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할 수 있는 억압 정권을 강화하는 일이 잦다. 정부는 폭력 행사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 반대로 사람들의 비교우위는 협력을 거부할 능력에 있다. 그 협력 없이는 정부가 지속되기 거의 불가능하다. 납세 거부, 불매, 총파업, 법에 대한 광범위한 불복종이 정부에 얼마나 치명적일지 생각해 보라. 이런 전술은 비폭력적이지만 보편적이고 굴하지 않게 쓰인다면 어느 정부든 두려워할 것이다. 비폭력에는 다른 장점도 있다. 폭력보다 덜 위험하고 급진적으로 보여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더 쉽게 … 얻는다. 참여 비용이 낮아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전통적인 비전투원인 어린이, 여성, 노인도 비폭력 투쟁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반대편을 설득하고 지배 계급 안에 이견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일반적으로 폭력보다 사상자와 물적 손실이 훨씬 적다. 또 폭력 행동보다 분산되어 있기에 성공하더라도 한층 더 억압적인 국가를 낳을 가능성이 적다.” — Bryan Caplan, “The Literature of Nonviolent Resistance and Civilian-Based Defense”

“정부는 사람들에게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내부의 적 때문에 위험에 처했으며 그 위험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정부에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이라고 확신시킨다. 이 사실은 혁명과 독재 때 가장 두드러지지만 정부의 권력이 존재하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모든 정부는 자신이 없다면 상황이 훨씬 나쁠 것이라고 주장하며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폭력 행위를 정당화한다. 정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확신시킨 뒤 통제 아래 두고, 그 상태에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게 강요한다. 그렇게 다른 나라가 공격할 위험이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람들 눈에 확인된 것처럼 보인다.” — Leo Tolstoy, Christianity and Patriotism (1895)

“폭력을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체제의 게임을 하는 셈이다. 기득권 세력은 당신이 싸우도록 짜증 나게 할 것이다. 수염을 잡아당기고 얼굴을 툭 칠 것이다. 당신이 폭력을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 다룰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룰 줄 모르는 유일한 것은 비폭력과 유머다.” — John Lennon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방어할 때를 제외하면, 우리는 폭력을 쓸 수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 Errico Malatesta

“그래서 우리는 군대 대신 공동체 방어 네트워크를 세운다. 권력 대신 신뢰를 쌓는다. 즐거운 놀이와 굴하지 않는 반란을 결합한다. 연대로 사랑을 보여 주고, 대담한 호기심과 노력과 우정을 실천하는 불경한 행동으로 집단 정체성과 지역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다. 패거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네트워크를 세운다. 혼자라고 느낄 때도 우리는 급진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연결망 속에 있다. 크고 작은 행동과 생각과 저항을 통해 아주 특별한 것을 세우고 있다. 당신이 겪는 아픔과 투쟁이 목숨이 걸릴 만큼 절실한 현실이듯, 우리 사이의 유대도 분명한 현실이다. 아무리 애써도 아나키즘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희망을 품는 데 드는 대가가 갈수록 커지더라도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Stigmergic Parity and Revolt

직접행동

“사람들은 우리의 작은 노력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 벽돌 한 장씩 쌓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연못에 던진 작은 돌이 모든 방향으로 물결을 퍼뜨린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다. 주저앉아 절망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 Dorothy Day ๖

“사려 깊고 헌신하는 소수의 시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마라. 실제로 세상을 바꾼 것은 언제나 그것뿐이다.” — Margaret Mead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당신의 의견이 아니라 당신이 몸소 보이는 행동이다.” — Paulo Coelho

“부당한 법이 있다. 만족하고 복종할 것인가? 고치려고 애쓰면서 성공하기까지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어길 것인가? 이런 정부 아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다수가 법을 바꾸도록 설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항하면 해결책이 악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결책을 악보다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정부 자체의 잘못이다. 정부가 그렇게 만든다. 정부는 왜 개혁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지 않는가? 왜 현명한 소수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소리 지르고 저항하는가? 왜 시민들이 경계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정부가 시키는 것보다 더 잘하도록 북돋지 않는가?” — Henry David Thoreau, Civil Disobedience

“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불복종이 인간의 본래 미덕이라는 것을 안다. 진보는 불복종을 통해 이루어졌다. 불복종과 반란을 통해서다.” —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그들은 자신의 힘이 투표의 힘에 있는 게 아니라 생산을 멈출 능력에 있음을 배워야 한다.” — Voltairine de Cleyre, Direct Action

“새 질서에서 노동조합 관료제의 주된 기능은 조합원들의 비공인 파업과 작업 현장에서의 직접행동을 억누르고, 노동 행동을 NLRB 규칙에 따른 공식 파업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 Kevin Carson

“아고리즘은 콘킨이 ‘수익성 있는 시민 불복종’이라 설명한 방법으로 국가에 대한 지원을 점진적으로 거둔다고 본다. 국가가 맡던 기능을 분산된 기관으로 넘겨 국가의 수입과 존재 이유를 말려 버리는 것이 아고리즘에 따르면 자유시장을 이루는 가장 실현 가능한 길이다.” — “Agorism,” Encyclopedia, Konkin의 전략을 설명

“당신의 사무실에서 내가 계속 세금 납부를 거부해 투옥될 것이라고 최근 알렸기에, 납세하지 않는 이유를 미리 밝히는 이 글을 쓴다. 체포되면 1948년 현재까지 내 소득을 정확히 보고하겠다. 주로 전쟁을 벌이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의 부당함에 대한 내 믿음은 지난 6년 동안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귀 부서에 제출한 진술서와 Catholic Worker에 실린 글에서 이미 밝혔다.” — Ammon Hennacy

“올해 천 명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폭력적이거나 피비린내 나는 조치가 아니다. 오히려 세금을 내서 국가가 폭력을 저지르고 무고한 피를 흘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런 조치다. 평화로운 혁명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이 바로 그 정의다. 세금 징수관이나 다른 공무원이 실제 누군가 그랬듯이 ‘하지만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진정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직을 그만두십시오’라고 답한다. 통치받는 이가 충성을 거부하고 공무원이 직을 그만두면 혁명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피가 흐른다고 해 보자. 양심이 상할 때 흘리는 피 같은 것은 없을까? 그 상처로 인간의 진정한 인간성과 불멸성이 흘러나가고 그는 영원한 죽음을 향해 피를 흘린다. 나는 지금 그 피가 흐르는 것을 본다.” — Henry David Thoreau, Civil Disobedience

“가난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면 급진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 — 익명

“농장의 노예들이 ‘지하철도’로 탈출할 수 있는데도 앉아서 주인을 뽑고 선거운동과 후보자들을 위해 힘을 쏟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분명 그들은 대항 경제라는 대안을 고를 것이다. 로스바드 박사도 분명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촉구할 것이며, 노예제 폐지파 노예주당이 당선될 때까지 농장에 남으라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할 것이다.” — SEK III

“부자들이 투표로 자기 부를 빼앗도록 허용하리라고 절대 속지 마라.” — Lucy Parsons

“위대한 생각은 시작할 때 결코 법 안에 있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법은 움직이지 않는다. 법은 고정되어 있다. 법은 조건이나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를 묶는 전차 바퀴다.” — Emma Goldman, 1917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변화는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전환이다. 각자의 정원에서 작은 규모로라도 말이다. 10퍼센트만 그래도 모두에게 충분하다. 그러니 정원도 없이, 공격하는 바로 그 체제에 의존하고, 음식과 거처가 아니라 말과 총알만 만들어 내는 혁명가들은 헛된 일을 한다.” — Bill Mollison

기회의 창

“기존 현실과 싸워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기존 모형을 쓸모없게 만드는 새 모형을 세워라.” — Buckminster Fuller ๖

“국가는 혁명으로 부숴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태, 인간 사이의 특정한 관계, 인간 행동의 한 방식이다. 우리는 다른 관계를 맺고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국가를 파괴한다.” — Gustav Landauer, Colin Ward가 The State and Society에서 인용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그 권력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때는 왕권신수설도 그렇게 보였다.” — Ursula K. Le Guin, National Book Awards acceptance speech (2014)

“정부 또는 국가라 부르는 이 거대한 기계의 모든 바퀴를 하나씩 줄이고, 단순화하고, 분산하고, 제거하여 정치 또는 정부 체계를 경제 체계 안에 녹이고 가라앉혀 사라지게 하는 것.” — Pierre-Joseph Proudhon, General Idea of the Revolution in the Nineteenth Century

“인류가 이 행성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협력적이고 분산되어 있으며 유연한 생산 방식으로 크게 전환해야 할 것이다.” — Eric Fleischmann

“이중 권력이란 현 세상과 싸우는 동안 새 세상의 배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낡은 것의 껍질 안에 새것을 세우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자주관리 기구를 장려한다는 뜻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율성을 행사하고 고용주와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다가 마침내 둘 모두와 맞서 없앨 수 있다. 이중 권력 전략은 권력 제도에 직접 도전하면서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구상하는 새 제도를 미리 실천한다. 따라서 국가에 반대할 뿐 아니라 혁명 상황에서 일어날 어려운 대결과 질문에도 대비한다.” — Beyond Resistance

제임스 리빙스턴과 미셸 바우웬스 같은 저자들은 위계에서 네트워크로의 전환을 설명할 때 과거의 전환을 명시적으로 본보기로 삼았다.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의 정치 문화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통해 탈자본주의 전환을 상상한다. 갑작스러운 봉기이며 대체로 국가의 장악과 같은 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서로마 제국과 봉건제가 쇠퇴했듯 수십 년 동안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

500여 년 된 자본주의 체계는 이전의 역사적 체계들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여러 사회 형태가 모인 것이다. 어떤 것은 상승하고 어떤 것은 쇠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일에 하나의 진보 세력이 단일한 덩어리로서 극적인 단절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유진 홀랜드의 주장처럼,

처음부터 사회나 생산 방식을 하나의 총체적인 체계로 생각할 때에만 그런 급진적인 구조적 단절이 필요하다. […] 이런 요소들을 지배적인 것, 잔존하는 것, 새로 생겨나는 것으로 파악하면 유토피아의 전망은 상당히 좋아진다. 비판하고 거부해야 할 요소들, 아마 ‘지배적인’ 것들 옆에 긍정하고 지지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것들, 곧 ‘새로 생겨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

결국 낡은 질서의 세력이 전환을 막으려다 실패할 때 상황은 결판난다.

[…] 현재 우리 상황은 유리하다 […]. 다중의 구성 권력이 성숙해 의사소통과 협력의 네트워크와 공통의 것을 생산하는 활동을 통해 대안적인 민주 사회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간의 문제가 핵심이 된다. 단절의 순간은 언제 오는가? […]

혁명 정치는 다중의 움직임과 공동의 협력적 결정이 쌓이는 과정에서 단절의 순간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단절이 아무리 갑작스럽고 극적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은 오래전부터 진행된 ‘낡은 사회의 껍질 안에 새 사회의 구조를 세우는’ 과정이 마침내 도달한 지점일 뿐이다.

[…]

존 홀러웨이도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처럼 탈자본주의로의 전환도 ‘기존 질서의 틈새에서 진행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자본주의 기업과 국가 모두의 대안으로서 공유 자원에 바탕을 둔 동료 생산은 다음을 가능하게 한다.

자본의 통제에서 대체로 벗어난 새로운 생활 방식과 상당한 정도로 사회화된 생산 수단을 통해 사용 가치를 직접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것. 이 새로운 과정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데 자본의 특정한 역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이 아니라 탈자본주의적이다.

— Kevin Carson, The Desktop Regulatory State, “The Transition from Hierarchies to Networks”

“법적으로 지배 권력의 통치 방식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여러 이유로 그 권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뒤엎을 수 없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독립적인, 대안적인, 또는 병행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존엄을 지킬 유일한 해결책이다.” — Ivan Jirous, Parallel Polis: An Inquiry, Academy of Ideas가 인용

“안타깝게도 경제적 대항 제도는 더 큰 기업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작동한다. 하향식·위계적 조직문화를 가진 지배적 기업들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스스로도 그러한 문화를 받아들일 위험이 크다. 그래서 비영리 부문과 협동조합 부문의 경영이 자본주의 기업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위신을 위한 높은 급여, 중간관리직의 불필요한 증원, 관료제의 비합리성, 최신 동기부여 및 경영 이론의 교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다. 자본주의 금융 체계가 이 문제를 악화한다. 아래로부터 조직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때조차 전통적인 조직 모형을 따르는 기업에 신용의 형태로 긍정적인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 Kevin Carson, Building the Structure of the New Society Within the Shell of the Old

“수평적 네트워크 통신 기술은 대중의 의식이 전례 없이 빠르게 상전이할 수 있게 한다. 더그 맥애덤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집단적으로 두려움을 떨치고, 지금까지의 두려움이나 무관심이 거짓말에 바탕을 두었으며, 예전 사고방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결심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인지적 해방’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충분히 많은 대중이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결정하면 실제로 불가피해진다. 네트워크 통신 기술을 통해 그런 사람들의 임계 규모가 갑자기, 예상 밖에 모일 수 있다.” — Kevin Carson, The Desktop Regulatory State: “The Question of Repression”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대량학살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비극적인 역설이다. 유토피아를 설계하려는 시도가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 가운데 일부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 Benjamin A. Valentino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도 혁명 다음 날에는 보수주의자가 된다.” — Hannah Arendt

“근대의 모든 혁명은 국가 권력의 강화로 끝났다. 1789년은 나폴레옹을, 1848년은 나폴레옹 3세를, 1917년은 스탈린을 낳았다. 1920년대 이탈리아의 소요는 무솔리니를, 바이마르 공화국은 히틀러를 낳았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왕권신수설의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이 혁명들은 점점 더 대담하게 인간성과 진정한 자유의 도시를 세우겠다고 제안했다. 그때마다 점점 전능해진 국가는 이 야심을 승인했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 틀릴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살펴볼 수 있고, 어쩌면 교훈이 따라올 것이다. 이 글의 주제가 아닌 몇몇 설명은 제쳐 두고, 근대 국가의 기이하고 두려운 성장은 반항의 진정한 정신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 시대의 혁명 정신을 낳은 과도한 기술적·철학적 야망의 논리적인 결말로 볼 수 있다. 신의 도시가 무너진 뒤 마르크스의 예언적인 꿈과 헤겔 또는 니체의 지나치게 고무된 예측이 끝내 불러낸 것은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공포에 바탕을 둔 국가였다.” — Albert Camus, The Rebel

“…독재와 국가 권력이라는 수단으로는 그런 혁명을 이룰 수 없다. 노동자와 농민 스스로 실천하는 광범위한 아래로부터의 재건이 없다면 사회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우리는 … 농민과 노동자와 지식인을 포함한 노동계급 안에서, 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새로운 경제생활 전체의 자유로운 형태를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 미래 혁명의 인력을 기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한다.” — Pyotr Kropotkin

“지구에는 자신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제국의 폐허가 널려 있다.” — Camille Pag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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